[아시아경제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일본이 아사히신문 오보인정과 기사 취소를 빌미로 옛 일본군 안부 관련 유엔보고서를 쓴 작성자에게 일부 철회를 요구하고 군안부 문제 등 역사인식과 관련한 국제 홍보예산을 크게 올리고 있는 등 전방위 공세를 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가 1996년 일본군 위안부를 '성노예'로 규정하고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배상을 권고한 유엔 보고서(쿠마라스와미 보고서)를 라디카 쿠마라스와미(61) 전 유엔 경제사회위원회 인권위원회 여성폭력문제 특별보고관에게 일부 내용의 철회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스리랑카 법률가 출신인 쿠마라스와미 전 보고관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성노예제'로 규정하고 일본에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을 권고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1996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제출해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관해 '역사적 기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보고서는 유엔이 직접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본격 조사해 발표한 사실상 첫 사례였고 우리 정부는 이 보고서를 인용해 일본의 진정성있는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쿠마라스와미는 지난 8월9일 스리랑카 콜롬보 자택에서 한국 외교부 공동취재단과 가진 인터뷰에서 "내 보고서는 위안부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했으며, 역사적인 자료들도 많이 보고, 일본 여성 비정기구(NGO)를 통해 들은 정보도 있었다. 이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봤을 때 명백히 대부분 강제성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게이 맥두걸 유엔 인권소위원회 특별보고관도 몇 년 뒤에 위안부 관련 보고서를 썼는데 같은 결론이 나왔다"면서 "일본 정부가 강제성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나 아사히 신문이 지난 8월 제주도에서 여성을 위안부로 삼기 위해 강제 연행을 했다고 증언한 야마구치현(山口?) 노무보국회 시모노세키부 동원부장을 지낸 요시다 세이지(吉田?治)의 증언을 허위라고 판단하고 보도의 일부를 취소하자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은 커녕 유엔특별보관에게까지 압박을 가한 것이다.
사토 구니(佐藤地) 일본 외무성 인권·인도 담당대사는 지난 14일 미국 뉴욕에서 쿠마라스와미 전 유엔 특별보고관을 만나 아사히신문이 지난 8월, 오보였다고 인정한 요시다 세이지의 조선인 군위안부 강제연행 증언과 관련된 보고서 내용을 철회하라고 요청했다.
쿠마라스와미 전 특별보고관은 이에 대해 "요시다 증언은 (보고서 작성에 사용된) 증거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철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쿠마라스와미 전 보관은 앞서 지난 달 교도통신 기자회견에서도 "요시다의 증언은 증거의 하나에 불과하다"면서 "증언을 인용한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서 수정은 필요 없다"고 못박았다.
일본은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역사인식과 관련한 국제홍보 예산을 대폭 늘려 홍보전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의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15일 중의원 내각위원회에서 군위안부 문제 등 역사인식과 관련한 자국 정부의 대외 홍보 전략에 언급, "올해 정부 홍보실의 국제홍보 예산을 지난해의 2배로 올렸으며 내년도는 거기서 다시 배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기보다는 국제여론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현재 국면을 타개하려는 속내를 보인 것으로 풀이됐다.이에 따라 한일 관계는 더 나빠지고 일본이 바라는 한일 정상회담도 더 요원해질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진정성있는 진전이 없으면 한일 정상회담은 열릴 수 없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가지라고 건의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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