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등에 지원하는 국고보조금이 줄줄 새고 있다.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지난해 감사원과 검ㆍ경이 적발한 국고보조금 비리 규모는 1700억원에 달했다. 올해도 6월까지 경찰이 단속한 비리가 469건, 713억원에 이른다. 드러나지 않은 사건까지 더하면 실제 비리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이 분명하다. 특정 사업을 장려하기 위해 지원되는 국고보조금이 '눈먼 돈'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만하다.
비리 유형은 갖가지다. 경북 구미의 한 대안학교 교장은 강사료 등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1억1000만원을 빼돌렸다. 간호사 등에 원격 직업훈련을 한 것처럼 조작하고는 2억6000여만원을 가로챈 직업훈련기관 대표들이 무더기로 잡히기도 했다. '청렴ㆍ공정 공직사회 정착을 위한 심포지엄' 명목으로 보조금을 지원받고는 1502만원을 가로채 자녀 학원비와 용돈으로 쓴 사업자도 있다. 올 상반기 중에 적발된 부정수급자만도 2279명이다. 사방이 구멍인 셈이다.
보조금을 임자 없는 돈으로 생각하는 '보조금 사냥꾼'들이 문제이지만 정부의 허술한 관리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지난해에 나간 국고보조금이 50조5000억원에 이른다. 중앙부처와 지자체가 따로 관리하는 탓에 서류를 약간만 다르게 해 이중으로 탈 수 있는 허점이 있다. 지원만 할 뿐 사업 이력이나 보조금 사용처의 적절성, 성과 평가 등 사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점도 한 원인이다. 이로 인해 사업지원→부정수급→적발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가 비리 방지를 위해 보조금 관리 실태를 손보겠다고 밝혔다. 유사ㆍ중복 사업을 통폐합하고 부처별로 흩어진 보조금 관리를 연계ㆍ통합해 정보를 공개하는 것 등이 골자다. 대상 사업자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비리가 발견된 사업은 예산을 깎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사안의 심각성을 생각할 때 당연하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형식적인 서류 심사가 아닌 현장 실사를 의무화해 대상 사업 선정에서부터 비리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보조금 수급 자격을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사업 이력, 보조금의 용도 외 사용점검 등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함은 물론이다. 현재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불과한 부정 수급자에 대한 처벌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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