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1984년 5월6일 부모님을 따라 여의도광장에 갔다. 한국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날 교황을 멀리서 지켜보며 내 스스로 '화해'와 '포용'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질풍노도의 청소년 시기였지만 이날 만큼은 성숙한 성인의 모습이었다.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의 한국 방문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최초의 남미 출신이자 비유럽국가로는 1282년 만에 교황에 선출된 프란치스코에 대한 관심은 전세계적으로 뜨겁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머물 14일부터 18일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향을 받아 화해와 포용에 대해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교롭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 첫 날은 금융권의 뜨거운 관심사인 KB금융과 국민은행 임직원들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리는 날이다. 그동안 수차례 제재심의가 열렸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미뤄져왔다.
금융당국이 14일에는 제재를 최종 확정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만큼 이날 임영록 KB금융그룹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의 징계 수위도 결정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이 사전 통보받은대로 모두 중징계를 받거나 한 사람만 중징계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 또 두 사람 모두 경징계로 제재 수위가 낮춰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경징계 가능성이 나오자마자 정치권에서는 금융당국의 제 식구 감싸기와 책임회피가 도를 넘었다면서 지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임 회장과 이 행장에게 경징계를 택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최종 제재 결정이 나오면 KB금융은 또 한 번 조직안팎에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특히 최근 KB금융 내홍의 발단이 된 주전산시스템 교체 논란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신상에 변화가 올 수 있다.
주전산시스템 교체를 놓고 임 회장측과 이 행장측간 갈등이 심했던 만큼 이에 대한 보복인사가 있을 것이란 우려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임 회장과 이 행장간의 힘겨루기에서 이긴 승자가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대규모 인사이동이 이뤄질 경우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 조직원들간에 갈등이 커질 수도 있다. 가뜩이나 각종 금융사고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KB금융 입장에서는 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때문에 금융당국 최종 제재 이후 KB금융이 보여줄 모습이 매우 중요하다.
다행히 최근 KB금융 임직원들 사이에서 '다시 한번 해보자'는 긍정의 메시지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 들어 잇따라 발생한 사건들로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다시 한번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 금융회사로 우뚝 일어설 것이란 기대감이다.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던 일부 임직원들도 용기를 내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에 적극 나선 분위기다.
KB금융의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는 말들이 떠오른다.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는 화해와 포용이 KB금융에도 널리 확산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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