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산예비군 훈련장에서 예비군들 목소리 직접 들어보니…
"소원 수리하면 배신자 낙인 찍는 문화 변하지 않아"VS "우리 때도 없던 황당한 사건 자꾸 발생"
[아시아경제 김재연 기자]"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보면 참담합니다. 저희 때 조금 좋아지나 싶었는데 결국 제자리네요" (예비군 6년차 김모씨)
11일 8시간짜리 향방기본훈련이 열리고 있던 노고산예비군 훈련장. 예비군들이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경사가 가파른 각개전투장을 올라갔다. 근무태도 점수가 좋으면 빨리 퇴소할 수 있다는 설명에 누군가 군가를 부르자 훈련장은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그러나 윤 일병 사건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이미 몇 년 전 군생활을 마친 이들에게도 윤 일병 사건은 충격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김모(34)씨는 "우리 때도 소원수리를 하면 배신자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며 "(윤 일병 사건을 접하며)우리 때와 달라진 게 없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식당에서 만난 이모씨는 "무관심한 간부, 폐쇄적인 문화 등 군내 시스템적인 문제때문에 이 같은 일이 또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과거 자신의 군 생활 때도 없었던 '황당한' 사건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수도방위사령부에서 복무했다는 예비군 6년차 최광운(30)씨는 "군대 내 인권 문화 바람이 불면서 일병 때부터 부대 내 폭행은 없었다"고 말했다. 예비군 5년차 최재만씨도 "단독소대에서 구타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윤 일병 사건처럼 엽기적인 폭행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 일병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포병대대 행정병으로 근무했다는 이경식씨는 "군대 자체의 폭압적인 문화때문에 구타ㆍ가혹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윤종경(30)씨는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왕따 등 패거리 문화로 문제를 일으켰던 세대들이 대거 군대에 들어오면서 각종 문제가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군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군바리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많은 조직에서 내부 고발자가 배신자로 몰리고 현실이나 주변의 눈총에 시달리게 되는 것은 군대와 닮았다는 것이다. 기초부대훈련장에서 만난 한 예비군은 "군 사건을 보다보면 사회에 나와 있는게 다행이라고 안도하다가도,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라고 해서 뭐 그리 다를 게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군대 생활 부적격자의 군 입대가 사건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최모씨는 "이 병장과 같이 폭력적인 성향의 사람은 사회에서도 문제를 일으켰을 것 같다"며 "저런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군대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각자 생활한 부대와 경험에 따라 윤 일병 사건을 보는 시각도 엇갈리는 모양새다.
예비군들은 일련의 폭행 및 가혹행위 문제를 풀기위해선 간부들의 관리 감독과 더불어 병영 문화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예비군 5년차 이모씨(30)는 "일선 부대에선 간부가 조금 바람을 잡아주는 것으로도 부대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며 "간부의 관리감독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선천적으로 심약한 기질의 사람도 군대에 들어올 수 있는 만큼 선임과 후임 간에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마련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재연 기자 ukebid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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