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의 지식인 김종직은, 연산군 대에 와서 무덤이 파헤쳐지고 뼈도 희미한 그 육신이 잘리는 벌을 받았다. 그가 쓴 '조의제문'이라는 글 때문이다. 조의제문은 '의제(義帝,초나라의 회왕)의 죽음을 슬퍼하는 글'이란 뜻이다. 항우가 죽인 의제를 조상(弔喪)한 뜻은, 당시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단종을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뒷사람들은 판단했다. 그의 제자였던 김일손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사초(史草)에 기록했고, 연산군 대에 이극돈이 발견하여 '세조를 능멸한 대역무도'로 얽어 김종직을 부관참시하는 무오사화를 낳았다.
김종직에게 물어볼 수는 없으니, 그의 꿈 속에 문득 나타났다는 의제를 슬퍼하는 글을 지은 것이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의분 때문이었는지 명쾌하게 알 수는 없다. 그는 그의 글이 먼 뒷날에 시신이 파헤쳐지는 재앙과 함께 많은 뜻있는 이들의 경배를 아울러 받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을까. 꿈을 꾸었으면 그저 마음 속에나 새기면 될 일이고, 세조에 대한 깊은 비판을 품었으면 그저 잠자리에서 슬그머니 욕질이나 하고 말았으면 그만일 것을 왜 굳이 글로 남겨 평지풍파를 불렀을까.
쓰고 싶은 글이 있고 마음에 떠도는 생각이 있을 때, 그것을 표현하여 기록하고 싶은 욕망을 옛사람들은 기양(伎痒, 양자는 병질(疾)부에 養을 쓰는 게 맞다)이라고 불렀다. 밀란 쿤데라 식으로 말하자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려움'이다. 솜씨와 끼를 쓰고 싶어 마음이 간질간질하여 견딜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아무리 큰 불이익이나 괴로움이 있더라도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심정, 그것이 기양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직언을 뱉고마는 심리도, 단지 용기만이 아니라 뱃속 깊숙이 작동하는 기양이 꿈틀거린 것이다.
나 또한 돌아보면, 쓰지 말아야할 글, 하지 말아야할 말, 공연히 화를 불러일으키는 표현들을 참지 못하고 미친 듯이 뿜어올렸다. 그런 것들이 때로 소동을 일으키고 분개를 사고 괘씸한 마음을 긁어, 나를 가파르고 딱한 지경에 몰아넣기도 하였다. 그쯤에서 참으면 될 것을, 꼭 긁어버려 큰 역풍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보면서 사람들은 혀를 차지만, 마음 속에 들어있는 기양 또한 하늘이 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찌 글만이 그렇겠는가. 그림이나 사진같은 것, 혹은 춤이나 노래나 연주같은 것, 혹은 스토리나 개그같은 것 또한 그러하다. 한 글자를 찾기 위해 20년을 매달린 추사 김정희의 집념도 기양의 소산이며, 풍자시를 읊다 권력에게 치도곤을 당하는 유신시절의 시인도 기양을 못접은 것이다.
세상의 모든 천재는 기양의 발휘이니, 하늘은 인간에게 어떤 재능을 준 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풀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도록 하는 불가항력까지 함께 동봉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블로그 글쓰기도, 지극히 개인적인 많은 생각과 일상과 삶의 면모를 서치라이트를 비춰 들춰내는 일이겠지만 멈추지 못하는 까닭은, 지금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엇처럼 기양이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