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부총리와 경제5단체장 첫 미팅 들여다보니
과세 부작용 지적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22일 오전 7시25분.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5단체장과의 첫 상견례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인 대한상공회의소 회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기문 회장이 가장 먼저 도착했고, 허 회장이 두 번째로 회의장 앞에 나타났다. 특유의 무표정이었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무슨 얘기 하실 거예요?". 평소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았던 허 회장은 이날 짧게 말문을 뗐다. "사내 유보금 해야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최 부총리를 출입구에서부터 모시고 들어오면서 10분간 티타임이 진행됐다. 이어 최 부총리의 모두 발언. 최 부총리는 "경기 회복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경제계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는 원론적인 수준의 당부를 했다.
이어 박용만 회장이 발언을 했고, 허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허 회장은 "사내 유보금 과세의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며 운을 뗐다. 최 부총리와 경제5단체장 첫 만남이어서 화기애애하게 시작된 분위기는 순간 긴장감이 돌았다. 최 부총리 얼굴도 굳어졌다. 그는 이어 "사내유보금 과세 문제를 폭넓은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판단해 달라"고 당부했다,
허 회장은 계속된 비공개회의에서도 사내 유보금 문제를 짚은 것으로 전해졌다.
옆집 아저씨처럼 인자하면서도 평소 말수가 적은 허 회장이 이처럼 최 부총리를 상대로 공세를 펼친 것은 사내 유보금 과세 문제가 재계는 물론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내유보금 과세가 오히려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켜 결국 경기 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전경련의 판단이다.
오히려 허 회장은 "내수활성화를 위해서는 규제개혁과 투자가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의 회복이 시급하다"면서 "경제혁신 3개년 개혁과 규제개혁 과제 차질 없이 진행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경련은 이번 논란이 사내유보금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사내유보금이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 중 배당되지 않고 회사 내부에 남아 있는 돈을 말하는데 이 자금은 모두 현금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공장, 기계설비, 토지 등에 투자가 되는 데 이렇게 투자가 된 현물도 모두 사내유보금으로 잡힌다.
전경련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사내유보금의 84% 가량이 투자가 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3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 442조원 중 현금성 자산은 15%에 불과하다.
이중과세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사내유보금은 이미 세금을 낸 이익잉여금과 같은데 여기에 다시 과세를 한다면 이중과세에 해당될 우려가 높다는 설명이다. 실제 정부 역시 2001년까지 운영하던 '적정유보초과소득에 대한 법인세 과세'를 기업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폐지한 바 있다.
국부유출과 국내 기업의 해외이전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처럼 해외 생산 및 판매 비중이 높은 기업의 경우 과세 회피를 위해 외국에서 발생한 이익을 국내로 들여오지 않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날 회의는 최 부총리가 비공개 회의에서 재계 의견을 받아들여 사내 유보금에 대한 과세보다는 인센티브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다시 분위기가 좋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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