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정홍원 총리 유임은 문창극 사퇴 후 거론되던 여러 시나리오 중 가장 그럴 법하지 않은 것이었다. 사실상 경질된 총리를 다시 쓴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하고, '강력한 국가개조'를 추진할 컨트롤타워로 적합한 인물도 아니라는 평가는 청와대도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바였기 때문이다.
'국정공백의 장기화를 막기 위한 고심 끝 결정'이란 청와대의 공식 설명을 감안하면 정 총리 유임 결정은 마땅한 인물을 적절한 시점에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 판단에서 나온 차선책임이 분명하다. 청와대는 청문회 등 정치권과 연관되는 일정이 7ㆍ14 새누리당 전당대회와 7ㆍ30 재ㆍ보궐선거와 뒤섞이는 일은 없도록 한다는 기본 방침을 세우고 있었다.
후보자 물색을 포기한 결정은 박 대통령 인재풀이 바닥났기 때문이라 우선 생각해볼 수 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예측 가능했던 인물인 것은 대선 캠프 정치쇄신위원장으로 활약한 만큼 애초부터 인재풀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전 후보자 사퇴 후 발탁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부터는 상황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문 전 후보자가 비선라인 추천 인물이란 설이 돌고 있듯, 편협한 인사추천 방식을 고수한 박 대통령은 인물난을 자초한 측면이 있고, 문 후보자까지 낙마한 마당에 새 인물을 찾는 것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많이 나온다.
윤두현 홍보수석의 설명을 통해서도 이런 분석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는 26일 오전 정 총리 유임을 발표한 뒤 기자들과 만나 "많은 분들을 놓고 (적임자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좋으신 분은 많지만 고사하신 분도 있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인재풀 자체가 좁았다는 것과 그나마 총리감으로 적당한 사람은 여론검증이나 청문회 통과가 어려운 현실에 부딪혔다는 두 가지 고백이 섞인 말로 들린다.
이와 더불어 박 대통령 스스로 3번째 낙마에 대한 위험부담을 크게 느꼈을 가능성도 높다. 문 후보자 사퇴 후 박 대통령은 "청문회까지 가지 못해 안타깝다. 앞으로는 부디 청문회에서 잘못 알려진 사안들에 대해서는 소명의 기회를 줘 개인과 가족이 불명예와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며 여론재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그러나 새 후보자 역시 이런 과정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이 3연속 인사실패라는 위험을 감수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일련의 과정에서 "이런 검증방식이라면 누구도 여론ㆍ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불만을 터트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안대희ㆍ문창극에 이어 3번째 후보까지 사전에 걸러지지 않은 '흠결'이 발견돼 낙마한다면 박 대통령의 지도력과 국정운영 동력이 크게 훼손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때문에 박 대통령은 인적쇄신 의지에 대한 비판을 받더라도 정 총리를 유임시켜 국정을 정상화시키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공식 국회 청문회가 아닌 여론재판을 통해 후보자에게 불공평한 검증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표출함으로써 여론을 어느 정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