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뒷돈을 챙기는 데 위아래는 없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23일 낸 보도자료 글자 그대로다. '슈퍼 갑(甲) 롯데홈쇼핑 상품기획자(MD)로부터 최고경영자(CEO)까지 총체적 비리'.
벤더와 납품업체로부터 받은 뇌물을 MD는 생활부문장에게 상납하고, 생활부문장은 다시 영업본부장에게 건냈으며, 그 중 일부는 당시 사장으로 재직하던 신헌 전 롯데백화점 대표가 받아 챙겼다.
신 전 대표는 본인의 사무실에서까지 직접 뇌물을 받았다고하니 이쯤되면 배포가 큰 것인지, 도덕 불감증이 심각한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상품 론칭이나 황금시간대 방송편성 등에 권한 행사가 가능한 영업ㆍ방송라인에서만 비리 행위가 나타난 것도 아니다. 총무팀장은 을(乙)의 지위에 있는 인테리어 공사업체를 동원해 회삿돈을 횡령했고, 이 돈은 다시 경영지원부문장과 대표이사에게 흘러들어갔다.
분야를 막론하고 해먹을 수 있는 곳에서는 다 해먹었다는 얘기다.
수법도 다양했다. 구속된 간부 중에서는 내연녀의 동생 명의로 된 통장으로 뇌물을 받는가 하면 이혼한 전처의 생활비를 대납시킨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 도박빚을 대신 갚으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한 사례도 있다.
롯데라는 대기업에서 대표이사부터 직원까지 연루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비리 행위가 수년 째 계속됐지만 자정은 커녕 내부 감독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홈쇼핑과 합병 이후 요직은 롯데 출신들이 독식했고, 그 중에서도 끼리끼리 라인을 형성했다. 조직내 견제는 커녕 줄타기만 성행했다.
검찰은 어제 기자들의 질문에 이번 사건의 정점은 신 전 대표고, 그룹 오너는 홈쇼핑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답했다. 수사확대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 답변 덕에 롯데가(家)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지 모른다. 그렇다고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방치했다면 더욱 심각한 일이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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