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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조용한 선거? '죽은 선거'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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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사느냐 죽느냐'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선거치고는 너무나 '조용한' 선거였다. 그 흔한 유세차와 명함 대신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배낭을 선택했다. 직접 발로 뛰며 시민들을 만나겠다는 의지였다. 기존 선거와 차별화된 유세. 네거티브 없는 유세에 시민들은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선거운동기간 내내 박 후보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용한 선거'는 한편으로 의문도 남겼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참정권의 적극적인 실현에 기여하게 하는 데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측면도 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박 후보는 많은 공약을 내세웠지만 상대방인 정몽준 후보 측이 제기한 이른바 '농약급식'이 선거판의 큰 쟁점이 돼버렸다. 서울시에 산적한 현안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이슈들은 부차적인 쟁점으로 밀려버렸다. '조용한 선거'는 진짜 사회적 논의와 관심이 필요한 이슈들에 대한 열기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선거의 진정한 주체인 '시민'의 참여도 기대만큼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선거 운동의 주역은 시민이 아닌 미디어가 돼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다른 지역도 다를 게 없었다. "이번 선거는 참 비정상적인 선거"라는 한 정치평론가의 말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이슈가 없으니 막판으로 갈수록 선거 국면은 결국 조직선거ㆍ인물선거 양상으로 흘러버렸다. 구태를 벗어난다고 했던 취지가 오히려 구태를 불러온 셈이다.


선거는 기본적으로 시민들을 정치의 주체로 끌어올리는 무대다. 주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선거는, 민주주의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끄러워지는 것을 민주주의의 양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결국 '조용한 선거'로 유세차의 소음은 줄어들었을지 모르지만 그 소음과 함께 선거판을 들썩이게 하는 소리와 열기의 분출도 함께 막혀버렸던 건 아닐까. 세과시를 하고, 요란법석을 떠는 기존의 선거운동을 지양하는 것은 좋다. 다만 앞으로는 부디 '조용함'이라는 형식에 갇혀 선거의 본질적인 의미까지 잃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용하면서도 치열한 선거'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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