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바닷속에 최소한 90명의 실종자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세월호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한 모금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 정성을 모아 이제 희망을 보여주자는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예전부터 늘상 봐 왔던, 익숙한 풍경이다. 참사가 터지면 항상 그 마지막은 성금 모금이었고, 그걸 전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는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그러나 아직은, 아직은 이르다. 성금 모금을, 희망을 얘기하기에는 아직은 너무 이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깊이 절망해야 한다. 지금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가슴을 치며 더 목 놓아 울어야 할 때다. 지금 섣부르게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희망이란 이름의 거짓 희망이며, 절망으로부터 너무 일찍 탈출하려는, 그럼으로써 진정한 희망을 가로막는 희망의 적이다.
성금 모금은 우리가 그 절망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무책임한 '탈출' 행위다. 아무리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성금 모금은 결국은 죽은 이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산 자, 남은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결국 산 자들이 고통스런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하겠다는 의식(儀式)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희생된 이들과 이렇게 빨리 고별을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그들이 내질렀을 비명과 고통을, 물이 차오르는 물속에서 오지 않는 구조의 손길을 기다렸을 그 공포의 순간들을 더욱 선명하게 기억해야 할 때다.
그 호곡(號哭)과 비탄과 끔찍한 기억의 고통 속에 적나라한 우리 자신의 맨 얼굴과 직면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니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뤄낸 보기 드문 성공사례니 따위의 환상과 착각과 자만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더 깊은 바닥으로 내려가야 하며 거기에서 우리 자신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진상과 실체를 발견해야 한다. 그럴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새로 출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기에 성급한 성금 모금으로 지금 우리 자신을 쉽게 위로하려 해서는 안 된다.
온 국민 성금 모금 식의 운동의 또 하나의 함정, 그것은 '책임과 권한의 사유화, 반성과 속죄의 사회화'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세월호 참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통절한 자기반성과 참회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 비극에 대한 '내 탓이오'의 반성, 누구도 그 짐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내 탓이오가 누구보다 처절하게 반성해야 할 이들, 자기 가슴을 망치로 내려치며 뉘우쳐야 할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후안무치한 이들로 하여금 내 탓이오의 순수한 마음과 온정 뒤편에 숨어서 남몰래 웃음을 짓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내 탓이오가 가장 필요한 이들이 있다면 이른바 '국가 대개조'를 하려는 이들일 것이다. 공장에서 규격화된 물건을 찍어내는 것과 같은 '개조' 식의 발상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그 개조 계획이 최소한이라도 성공을 하려면 그건 그 출발점을 '네 탓이오'가 아닌 내 탓이오에서 잡는 것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자신과 주변의 개조가 먼저다. 무엇보다 대통령 권한 책임에 대한 '비정상적 인식의 정상화'가 먼저 있어야 한다. 그것은 그 자신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에서부터 가능할 것이다. '하늘색' 옷으로써 천상의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듯이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와 발을 딛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 온갖 기괴하고 저급한 행태들을 보여주는 그 주변 사람들과 함께 국가개조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이야말로 재난이고 참사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구폐(舊弊)보다 그 자신들에 의한 신폐(新弊)가 '적폐(積弊)'의 핵심이 아닌지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세월'이란 망각의 늪이 자신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품는 것보다 세월호로부터 진정으로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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