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보면서 이번처럼 눈물을 많이 흘린 적은 없었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 "얘들아 살아서 보자" "전부 사랑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살아서 만나자"
세월호에 탄 학생과 교사가 침몰 직전 부모, 제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보는 동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어 신문 덮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살아온 날이 반백 년을 앞두고 있지만 이처럼 슬프고 비통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사고가 나기 한 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겪던 슬픔과는 다르다.
지난 구정 때 기침을 자주 하셨던 아버지는 가벼운 감기인 줄 알고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셨다. 기침이 심해지자 큰 병원에 가셨고 진료 결과 폐암이 재발됐다는 진단을 받으셨다.
그리고 20여일을 앓으신 뒤 돌아가셨다. 구정 때 큰 병원으로 모셨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만 남았다. 아버지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죄인이 된 심정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고등학생과 중학생을 둔 학부모로서, 어른으로서 학생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죄스러울 따름이다.
이번 세월호 사고 원인을 놓고 수사기관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사고 원인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학생들을 방치한, 사지로 몰아 놓은 선장을 비롯한 선원 7명이 구속됐다. 왜 그들이 자신의 역할, 책임은 나 몰라라 한 채 제 목숨 지키기 위해 도망가기에 바빴는지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갈피를 못 잡는 정부의 사고 수습, 미흡한 위기관리 매뉴얼, 일부 공직자의 부적절한 언행. 한심한 수준이다.
신문을 읽어 내려가는 사이 '나는 내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가'를 반문하게 된다. 개인주의를 넘은 이기주의. 나만 살면 된다는 배려없는 이 사회.
결국 이 같은 병폐가 159명의 사망자와 143명의 실종자(24일 오전 8시 현재)를 낳는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죄인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어른들이 얼마나 있을까.
아버지는 '어머니 잘 모시고 남매 간에 우애하며 살고 자식을 건강하게 키워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걱정 마시고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라'고 했다. 그게 죄인이 된 아들이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했다.
사고를 지켜보는 과정에 아버지가 생각난 것은 마지막 도리 때문이다. "객실에서 기다려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에게 마지막 도리라도 다해 그들의 영혼을 달래는 것이 죄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세다.
더 이상 어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아이들이 어른을 보고 배우는데 어른들이 자신의 역할을 망각한 채 제 목숨 지키기 바쁘고, 제 몫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보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매번 발생하는 인재는 모두 어른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형사고가 나면 대책 마련에 나서 재발 방지책을 만드는 데 부산을 떨고 사고 수습 매뉴얼을 만들었다가 서랍 속에 처박아 놓고 또 다른 대형사고가 나면 우왕좌왕하는 재탕 사고대책도 이번에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아버지의 유언을 지켜 도리를 다하는 심정으로 이번 사고가 주는 메시지를 잊지 말자는 다짐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게 꽃다운 젊은 청춘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떠난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마지막 도리다. 젊음을 두 번 죽일 수는 없다.
노종섭 산업부장 njsub@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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