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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세월호라는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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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나는 살고 싶다. 인간의 본성이다. 나만 살고 싶다? 그것도 본성으로 이해해야 할까.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16일 오전 진도 앞바다에 떠 있던 여객선 세월호는 침몰하고 있었다.


수백명을 태운 거대한 배가 순식간에 바다 속으로 사라질 리 없다. 배가 가라앉기 전 승객들을 위험에서 구해낼 수 있는 1~2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이른바 '골든타임'이다.

세월호에는 단원고 학생 324명이 타고 있었다. 아이들은 다가올 재앙을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설사 위급상황이 생겨도 배 구조를 잘 아는 선장과 선원 등 '믿음직한 어른'들이 있다. 배를 타면서 숱한 상황을 경험하지 않았겠나. 위기상황에서는 그들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학생들의 생사가 걸린 골든타임을 자신들을 위해 썼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을 돌봤다. 아니 자신만을 돌봤다.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밝힌 내용은 씁쓸함을 넘어 참담할 지경이다.

승무원보다 빨리 배 침몰 사실을 신고했던 학생은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학생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는 선장, 항해사, 기관장 등 핵심 승무원들을 100% 구조했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들은 자기 살기에 바빴다.


합수부는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승객 구조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선원법 제11조는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선장은 인명 구조에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원은 선장 지시에 따르도록 돼 있다.


여객선 승무원의 승객 구조는 의무인 셈이다. 배 통로는 좁고 복잡한 공간이다. 위급 상황이 되면 일반인은 어디가 출구인지, 어떻게 해야 갑판 쪽으로 나올 수 있는지 알기 어렵다. 선원들은 배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그들만이 아는 통로로, 그들만의 통신 장비를 활용해 탈출했다.


러닝셔츠만 입고 밖으로 나왔던 어느 항해사는 다시 선실로 돌아가 웃옷을 걸치고 나오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승객을 구조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생명을 위협받는 그곳에 학생들만 남겨 놓았다.


학생들은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세요"라는 안내방송을 믿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절망했을까. 물이 점점 차오르고, 남은 산소도 얼마 없음을 느꼈을 때, 선원 누구도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을 때 아이들의 심경은 어땠을까.


침몰 순간 학생들의 대화 동영상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아 기울어졌어." "진짜 침수되는 거 아니야." "아 (선장이) 무슨 일인지 말을 해줘야지." "살려줘, 살려줘." "엄마, 아빠 사랑해요…." 그렇게 아이들은 시커먼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선장과 선원들은 참 비겁했다. 어쩔 수 없었다거나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로 '나 홀로 탈출' 행위를 변론할 수는 없다. 그런데 한동안 욕을 퍼부어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 홀로 탈출'을 선택한 그들은 어쩌면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쓰러진 이들을 짓밟고서라도 경쟁에서 이기려는 이들이 넘쳐나는 현실, 이 각박한 오늘의 우리 사회와 무엇이 다른가.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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