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유제훈 기자] '간첩 증거 조작'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아 수사를 받던 중 자살을 시도한 국가정보원 권모 과장(52)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 같은 기억상실증은 실제로 얼마나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심리학 전문가 및 정신과 의사들은 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9일 국정원 및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 간첩 증거조작 의혹을 받고 자살을 기도했던 권 과장은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호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자살시도 당일 이후의 기억을 잃어버려 자신이 왜 병원에 입원했는지 유우성씨 사건에서 자신이 한 역할은 무엇인지 등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심리학 전문가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가 심하면 기억상실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체적인 손상과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고에서 심적 외상을 받은 뒤 기억을 잃을 가능성은 있지만, 확률이 낮아 관련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황순택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살시도 이후 단기 기억상실증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발생 확률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권정혜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역시 "자살을 선택할 정도로 굉장히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가 생기면 기억상실이 일어날 수 있다"며 "그러나 가능성이 희박해 해외 사례와 연구 자료도 미미한 실정"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정신과 의사들은 신체, 특히 뇌에 이상이 생기면 의학적으로 기억상실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봤다. 박건우 고려대병원 기억장애클리닉 교수는 "산소 공급 중단으로 뇌 손상을 입으면 기억상실 증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며 "만약 뇌 부위 중 '해마'가 망가졌다면 최근에 있었던 일부터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뇌 손상을 입은 경우 회복되더라도 세세한 기억까지는 되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한 정신과 전문의도 "산소 공급이 멈췄다면 뇌 손상 때문에 기억상실 증세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면서 "자세한 것은 MRI사진을 판독해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가 실제로 손상됐는지를 파악해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현 시점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한 기억상실증인지의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다는 전문가도 있었다. 권 과장이 일정 기간 동안의 사건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진실인지가 먼저 밝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명호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권 과장이 기억을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정말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가 먼저 규명돼야 기억상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며 "이것이 입증되지 않으면 기억상실에 관한 어떠한 논의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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