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 가격 유가와 동반 하락…사우디 등 OPEC 묵인 필요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미국과 유럽의 대(對)러시아 제재 조치가 솜방망이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미국의 전략 비축유 방출 전술이 주목 받고 있다.
영국 경제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 제재 조치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미국의 전략 비축유 방출이라며 이로써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에 적잖은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미국은 현재 6억9600만배럴의 전략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1977~2009년 비축한 물량으로 1970년대 두 차례 중동 석유파동 이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이제 많은 비축유는 필요 없다. 최근 셰일혁명으로 에너지 생산량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회원국들에 90일치 석유 비축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맞춰도 현재 미국의 비축유는 하루 50만~75만배럴을 2년 동안 팔 수 있는 규모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원유를 내다 팔면 세계 유가는 배럴당 10~12달러 하락한다. 유가가 10달러 떨어지면 러시아의 연간 수출액은 400억달러(약 42조7600억원), GDP는 최대 4% 줄게 된다. 러시아 경제의 에너지 산업 의존도는 매우 크다. 따라서 유가 하락은 러시아 루블화 가치를 흔들 수 있다.
유가가 떨어질 경우 유럽의 소비확대에 도움이 된다. 유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러시아는 유럽에 수출하는 천연가스 가격을 유가와 연동해 결정한다. 유가가 떨어지면 러시아산 천연가스 가격도 떨어지는 것이다.
유가 하락은 미 소비경제에도 도움을 준다. 전략 비축유가 풀리면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최고 25센트 하락할 수 있다. 전략 비축유 방출로 미 정부의 재정수입 증가를 기대해볼 수도 있다.
전략 비축유를 방출하려면 두 조건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 무엇보다 미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미국은 캐나다에만 일부 에너지 수출을 허용할 정도로 에너지 수출 규제가 엄격하다. 최근 셰일혁명 효과로 에너지 수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의회의 반응은 굼뜨다.
의회의 승인보다 더 큰 걸림돌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응이다. 유가 하락은 사우디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OPEC가 석유 감산에 나서면 비축유 방출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사우디도 시리아·이란 문제에서 러시아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따라서 러시아 제재 수단으로 미국의 비축유 방출을 묵인할 가능성은 있다. 사우디와 러시아의 재정건전성을 놓고 볼 때 유가 하락에 따른 충격은 러시아가 더 클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의 전략 비축유는 이제 전략 물품이 아니라 흑자 자산이다. 셰일혁명으로 비축유의 전략적 필요성이 이미 사라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매각 시기다. 어차피 방출해야 할 비축유라면 러시아 제재가 절실한 지금이 전략적 적기라는 게 파이낸셜타임스의 설명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