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제품마다 인증을 따로 받게 되어 있어 비용과 시간이 낭비됩니다."
"뷔페는 5km 내의 빵집에서만 빵을 공급받을 수 있어 불편합니다."
"외국인 고용과정이 너무 복잡해요."
끝장토론에 참가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창조경제를 옭죈 겹겹의 규제를 풀어달라며 애로사항 토로에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부처 장관들은 '문제에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박근혜 대통령은 사안마다 꼼꼼하게 지적하며 세세한 규제완화를 촉구했다.
지난 20일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 끝장토론에서 중소기업들은 규제와 관련된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중복인증·시대착오 법규 문제 지적 잇따라 = 중소기업인들은 인증·법규적용 중복에 대한 지적을 쏟아냈다. 이지철 현대기술산업 대표는 "KS인증 외에도 185개 민간·법정인증이 있어 중소기업이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는 등 애로사항이 많다"며 "고효율인증의 경우 제품 규격별로 인증을 다 받아야 하다 보니 인증비용 부담도 크다"고 말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냉동공조 장비의 인증비용은 20마력 이하 제품은 400만원, 20마력 초과 제품은 600만원 이상이다.
박종국 여천NCC대표도 "공장부지 조성에 대해 산이법·산지법 중 한 가지 법에 대해서만 부담금을 적용해 달라"며 "과도한 부담금에 대한 경감이 개별 기업의 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긍정적 검토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공장부지 조성과 관련, 두 개 부처(국토부·산업통상부)의 법이 중복 적용돼 부담금이 증가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김미정 정수원돼지갈비 대표는 "외국인 근로자를 정부기관에 등록하려면 고용지원센터, 출입국심사소, 건강보험공단에 잇따라 신고해야하는 등 4번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신고서 양식도 너무 복잡하고 노동부와 국세청에 이중으로 신고해야 해 과정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심충식 선광 회장은 "항만배후부지로 개발 중인 인천의 항만물류단지는 건설·운영에 필요한 인허가를 항만법에 따라 받고 있는데 경제자유무역청의 허가도 따로 받아야 해 2010년도에 매립공사가 완료됐지만 올해까지도 부지조성 인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항만공사법에 의한 항만공사 실시계획을 받은 경우 관할관청을 일원화해 달라"고 말했다.
시대착오적 법규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제갈창균 한국외식업중앙회장은 "현행법에선 뷔페 영업을 하는 경우 5㎞ 이내에서만 빵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면서 "과거와 달리 운송수단이 발달한 지금 상황과는 맞지 않는 법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유정무 아이알티코리아 대표는 "어렵게 재창업에 성공한 많은 재도전기업이 신용조회제도의 불필요한 규제로 인해 애로를 겪고 있다"며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력과 도덕성을 갖춘 재도전기업은 대표자에대한 신용정보조회를 한시적으로라도 면제해 달라"고 말했다.
일선 부처의 무관심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지춘 한승투자개발 이사는 "문화관광부를 방문하면 반갑게 반기지만 지자체를 가면 그렇지 않다"며 "정부는 관광산업의 규제를 완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막상 지자체에는 온도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쓴소리를 뱉었다.
◆장관들 '공감한다' 입모아 = 이날 나왔던 애로사항들은 중소기업들이 이미 여러 차례 관련부처에 건의했던 내용들임에도 장관들은 쩔쩔매며 '공감한다'고 맞장구치기에 바빴다. '이미 대책이 마련돼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정승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제갈창균 회장의 지적에 "5km 이내에서만 빵을 공급키로 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거리제한이 있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도 항만의 이중승인 문제와 관련해 "타당한 지적"이라며 "법개정 등을 통해 해소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또 이 장관은 "그동안 기업항만 배후단지에 기업을 유치할 때 물량창출을 염두에 두다보니 물류기업을 주로 유치한 경향이 있다"며 "제조업 우대방안을 고려해 나가겠다"고 대책을 내놨다.
중복 인증 문제를 지적받은 윤상직 산업부장관은 "지난해 인증제도 중복해소 방안을 마련했으며, 향후 인증의 숫자를 줄이고 일몰제를 적극 적용하겠다"며 "자유무역협정 콜센터인 1380과 연계한 1381 콜센터를 마련해 인증 관련 문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1381을 국민들이 많이 알고 있나"고 질책하자 "2주 밖에 안 돼서…(인지도가 없다)"라고 말을 흐렸다.
박 대통령은 홍보를 위해 스티커를 제작한 129 콜센터 사례를 언급하며 "모르면 없는 정책이나 마찬가지"라고 재차 강하게 질책했다. 실제로도 이 번호는 20일 현재 결번인 것으로 나타나 윤 장관이 적잖이 체면을 구기게 됐다.
◆박 대통령 '잠깐만요'…말 가로막고 지적 = 박 대통령은 끝장토론 내내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경청했다. 장관과 실무자의 말을 중간에 끊고 지적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은 '손톱 밑 가시' 해소 상황을 보고하다가 박 대통령의 질타에 고개를 숙였다. 박 대통령은 "손톱 밑 가시 사례가 아직도 90여개가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완료가 안 된다고 하는 건 문제인데, 관계부처가 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강도 높게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송 부회장에 이어 민관합동규제개선전략팀 담당자인 최우혁 팀장에게 화살을 돌렸다. "팀장께서는 현장에서 이런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박 대통령의 질문에 최 팀장은 "준비가 안 됐는데…"라며 횡설수설했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이 해명에 나섰지만 박 대통령의 질타는 멈추지 않았다. 김 실장은 "접수된 것 중 60%는 해결되거나 해결되고 있는 중인데, 해결이 안 되는 것들 중에는 '시장에서 닭을 파는데 포장을 하지 말고 팔게 해 달라'는 류의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건의된 손톱 밑 가시 중 얼토당토않은 내용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그러면 손톱 밑 가시라고 선정은 왜 했나"고 다시 한 번 질타했다.
박 대통령은 "손톱 밑 가시가 나온 이유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라며 "된다 안 된다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위생도 지키면서 손톱 밑 가시도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인 대안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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