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역사인식 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한일 양국이 14일 아베 신조 총리의 '고노담화 계승' 발언을 계기로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게 될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는 회의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각자 취임 후 처음으로 마주 앉게 될 장소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한국에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 간 3자 회동을 하자고 제안했으나 우리 정부는 '성의 있는 조치가 우선'이라며 거부한 바 있다. 이어 나온 아베 총리의 고노담화 계승 발언과 한미 두 나라의 즉각적인 환영 표시는 3자 회동 성사 가능성을 한층 높여줬다.
다만 아베 총리가 3자 회동 성사를 위해 일종의 '성의 표시'를 한 것에 불과할 수 있어, 박 대통령이나 한국 외교부가 추가적이고 구체적인 '의사표시'를 요구할 경우 회동 성사는 어려워 질 수 있다.
한편 아베 총리의 이날 발언은 미국과 사전교감에 따른 조치인 듯한 인상도 있다. 아베 총리 발언 후 미 국무부는 "무라야마 총리와 고노 전 관방장관의 사과는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일본의 노력에 있어 중요한 장을 기록하고 있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고 연합뉴스가 이날 보도했다.
곧이어 15일 오전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를 덜어드리고 한일관계와 동북아 관계가 공고히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14일 참의원 예산의원회에 출석해 "아베 내각은 고노담화의 수정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간 고노담화를 부정하려는 태도를 취해온 아베 내각이 담화를 포함해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서 계승하고 있고 고노담화를 수정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고노담화는 1993년 8월4일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으로 고노 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다.
한국 정부가 아베 총리의 발언을 정상회담을 위한 기본 전제를 충족한 것이라 판단하고 있는지가 앞으로 확인해야 할 점이다.
4월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및 일본 방문 전까지 가시적인 관계개선 노력을 압박받고 있는 한국 정부가 아베 총리의 불충분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대화 재개를 위한 전향적인 '사인'을 보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는 앞으로 일주일 남았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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