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석윤 기자]일본의 대중작가 무라카미 하루키(65)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23일 동안 취재한다. 그 결과 써낸 책이 '시드니'다. '승리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에 김동주(38ㆍ두산)가 등장한다. 하루키는 한국과 일본의 동메달 결정전을 앞두고 '머리를 염색한 한국의 4번 타자'를 잔뜩 경계한다. 하루키의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는다. 김동주는 8회에 일본의 에이스 마쓰자카 다이스케(34ㆍ뉴욕 메츠)를 상대로 적시타를 쳐낸다. 하루키는 "역시 한국은 일본에 강하다"며 한탄한다.
프로야구 팬들이 김동주를 본 지 오래 됐다. 그가 마지막으로 출전한 1군 경기는 지난해 5월 17일 대전에서 열린 한화와의 원정경기였다. 자유계약선수(FA)로서 두산과 계약한 기간 중 마지막 시즌인 올해도 2군에서 시작한다. 겨울철 훈련도 1군 훈련장인 애리조나ㆍ미야자키가 아니라 대만에서 2군 선수들과 함께 했다.
훈련은 체력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면서 체중을 90kg대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몸이 무거우면 움직임이 둔해져 다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김동주에게는 악몽이 있다. 2012년 6월 21일 잠실에서 열린 넥센과의 경기에서 베이스 러닝을 하다 왼쪽 허벅지에 통증을 느꼈다. 정밀진단 결과 왼쪽 허벅지 근육이 파열됐다. 이 부상은 김동주가 2군을 들락거린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됐다.
김동주는 전지훈련 기간 중 열린 다섯 차례 연습 경기에서 타율 0.333(12타수 4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송일수(64) 감독의 눈에 들 정도는 아니었다. 송 감독에게 김동주는 놓치고 싶지 않은 선수지만 확신이 필요하다. 송 감독은 지난해 두산의 2군 감독을 맡으며 그를 가까이서 지켜봐왔다. 누구보다 그의 몸 상태와 심정을 잘 안다. 지난해 12월 감독에 부임한 뒤 가장 먼저 면담을 한 선수도 김동주였다.
송 감독은 "팀이 필요로 하는 시점에 준비가 잘 돼 있다면 언제든 불러올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시즌을 보내다 보면 전력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2군 선수들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를 기용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송 감독은 중심타선이나 주전 3루수 이원석이 다치거나 부진할 때 김동주를 활용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김동주는 프로입단 첫 해인 1998년(당시 OB)부터 지금까지 두산에서만 뛴 터줏대감이다. 열여섯 시즌을 뛰며 1625경기에 출전했다. 통산타율(0.309)이 3할을 넘을 정도로 꾸준히 활약했다. 특히 2001년에는 타율 0.324와 18홈런을 기록하며 펄펄 날았고, 생애 첫 우승도 맛봤다.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1년 동안 3할을 치지 못한 해는 2004년(0.286)과 2006년(0.250) 뿐이다. 2005년과 2008년, 2009년에는 주장을 맡아 팀을 이끈 그의 별명 '두목곰'은 두산의 뚝심야구를 상징했다. 그러나 좋던 시절은 지나갔고, 지금은 다시 1군 무대를 밟기 위해 몸부림치는 도전의 계절이다.
김동주에게 올 시즌의 의미는 남다르다. 재기에 성공하느냐, 이대로 선수생활을 마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다행히 고질적인 허벅지 통증은 사라졌다. 연습경기에서는 3루 수비도 병행하며 공수에서 차질 없이 훈련을 마쳤다.
황병일(54) 두산 2군 감독은 "모든 훈련을 적극적으로 하며 어느 해보다 열심히 몸을 만들었다"고 했다. 황 감독은 "베테랑의 노력은 함께 훈련한 2군 선수들에게도 큰 자극이 됐다"며 "기회 있을 때마다 무언가를 보여줬던 선수다. 올해도 기회가 온다면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두목곰'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수 있을까.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도전이다.
나석윤 기자 seokyun198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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