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외환은행 통합에 방점
사실 확인 안된 사고엔 책임 묻지 않아
[아시아경제 조은임 기자] '확인되지 않은 사고에 책임을 묻지 않고 통합에 방점 찍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실사구시(實事求是)'형 용인술이 베일을 벗었다. 당초 유임이 예상됐던 윤용로 외환은행장이 낙마한 반면 사기 외상채권담보대출 책임론에 시달렸던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연임된 것이다.
하나금융은 지난달 28일 이사회 내 위원회인 경영발전보상위원회(이하 경발위)를 열고 김종준 현 하나은행장과 김한조 외환캐피탈 사장을 각각 차기 하나은행장과 외환은행장 후보로 추천했다. 여기에는 '통합'에 방점을 찍되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사고 책임'을 묻지 않는 김 회장의 '용인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연임이 유력했던 윤용로 행장이 교체된 데는 하나ㆍ외환 통합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외환카드 분사 등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의 통합 작업들이 외환은행 노동조합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타개할 인물이 절실했던 것이다.
차기 은행장으로 내정된 김한조 외환캐피탈 사장은 32년 '외환맨'으로 근무해 오며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인물이다. 윤 행장이 통합과정에서 외환 임직원들의 불만을 해소하지 못한 데 경제관료ㆍ비외환 출신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판단이 주요 교체배경인 셈이다. 하나금융지주 고위관계자는 "이번에는 외환은행 출신이 은행장을 맡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훌륭한 자질을 갖췄더라도 조직의 목표달성에 부합하지 못하면 과감히 수장을 교체하겠다는 김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외환캐피탈 수장으로 리더십을 발휘했던 전력도 이같은 판단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해 말 외환캐피탈은 부실채권(NPL)투자회사로 업종을 전환하면서 구조조정을 진행한 바 있다.
반면, 1600여억원의 대형 대출사고가 일어났던 하나은행의 수장 김종준 행장이 연임된 데는 법정 공방에 앞서 미리 책임을 묻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주효했던 걸로 분석된다. 연임이 결정되기 전부터 업계에서는 법정공방을 앞두고 굳이 수장을 교체해 책임을 묻는 모양새를 만들진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하나금융 고위관계자도 "사건 조사가 진행 중이므로 사기대출은 교체의 이유가 될 수 없다"면서 "1년의 연임기간이 끝난 후 조사결과를 반영할 것"이라고 설명해 향후 책임소재는 확실히 물을 것임을 시사했다. 지난해 1000억원대의 금융사고를 일으켜 금감원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하나대투증권의 임창섭 대표를 교체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편 경발위는 이번 내정자 선임의 배경으로 '실적'을 내세웠다. 경발위 관계자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비용을 평가하는 총영업이익경비율(CIR)과 성과를 나타내는 자기자본이이익률(ROE)ㆍ총자산순이익률(ROA) 등이 정반대로 나왔다" 며 "순수하게 수치만 놓고 봤을 때 하나은행은 지난해 안정적인 실적을 보여 행장의 연임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조은임 기자 goodn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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