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윤재 기자] 효과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은 소통, 권한위임(Empowerment)에서 다른 조직과 비교해 단연 앞선 모습을 보인다. 소통과 권한위임은 상사와 직원간의 '신뢰'가 기본에 깔려야 한다.
25일 정부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는 모습에서는 소통과 권한위임, 신뢰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만들어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많은 부분을 도려냈다. 기재부가 지난 19일 요약본을 내놓을 당시 포함됐던 100대 과제 가운데 44개는 사라지거나 찌그러졌다.
최종 의사결정자의 '칼질'은 당연한 것이다. 그에 대한 책임도 의사결정자 몫이다. 칼질이 문제가 아니다. 다만 칼질을 하기 전에 충분히 협의하고, 칼질 이후의 결과물은 공유·논의하는 것이 옳다.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최소한의 소통이다.
기재부는 발표 하루 전까지도 기자들에게 "300페이지에 이르는 상세본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미 배포된 요약본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숱한 질문을 쏟아내는 기자들을 안심(?)시켰다. 청와대와 소통이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결국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한 25일 오전까지 기재부는 상세본을 내놓지 못했다. 당황한 기재부는 부랴부랴 오후 3시15분 서울과 세종을 연결하는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해명을 했다. 주무부서의 담당국장은 "국민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복잡한 내용을 추려내면서 시간이 지연됐다"면서 '국민'을 핑계 삼았다. '청와대가 기재부를 믿지 못하더라'라는 말을 차마 그의 입으로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책임은 청와대가 아닌 기재부의 몫이었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됐다. 26일 아침에 배달된 신문들에도 담화에서는 사라진 '100대 과제'가 그대로 담겼다. 청와대의 정부가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국민들이 잘못된 정보를 전달받고, 정책을 오해하게 됐다. 이미 25일 오후에 배달된 신문들과 대통령 담화에 맞춰 쏟아진 인터넷 기사들은 대부분 '거짓말'이 돼버렸다.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청와대는 대통령 담화 이후 묵묵부답이다. 현 부총리는 26일 아침 국무회의 직후 "청와대 발표와 달라진 것이 아니다. 더 물어보지 말아달라"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세종=이윤재 기자 gal-r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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