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코비치 지지세력·올리가르히들 마저 등 돌려…러시아, 강력 반발하며 긴장감 고조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사실상 실각하면서 3개월 동안 이어져온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시위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대통령 축출 이후 의회(라다)를 장악한 야권은 연립 내각 구성에 착수했고 조기 대선 실시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러시아가 군사개입을 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등 우크라이나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야당, 의회 장악=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전격적인 도피 이후 야권은 빠르게 권력을 장악했다. 야권이 주도한 의회는 23일(현지시간)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신임 의장을 대통령 권한대행에 임명했다.
투르치노프 의장은 오는 5월 25일 앞당겨 실시하기로 결정한 대통령 선거 때까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된다. 대통령 권한대행 결의안 표결에는 출석 의원 339명 가운데 285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투르치노프 의장은 대통령 권한대행 임명 직후 대국민 연설에서 "유럽과 통합을 다시 추진하는 게 급선무"라며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대화할 준비도 돼 있다"고 말했다.
◇설 자리 잃은 야누코비치= 대통령 권한대행 표결에 야권은 물론 야누코비치 지지 세력도 대거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야누코비치 정권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재벌 '올리가르히'들도 여론에 밀려 야누코비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
이틀 전 수도 키예프를 떠나 지지기반인 동부로 도피한 야누코비치는 이날까지 소재가 불분명한 상태다.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는 23일 새벽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동부 도네츠크주에서 수비대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출국을 시도했다 실패한 뒤 도주했다고 밝혔다.
외신들에 따르면 야누코비치는 "불법 세력이 우크라이나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자신이 여전히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강력 반발= 친(親)러시아 세력의 수장인 야누코비치의 실각에 러시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가진 전화 통화에서 "불법 극단주의 세력이 키예프를 장악했다"며 "야권이 장악한 의회는 합법 정부가 아니다"라고 발끈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우크라이나에 약속한 150억달러(약 16조875억원)의 차관이 지원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관영TV들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극단주의자들이 키예프와 서부 지역을 장악했다"고 보도하면서 우크라이나 방문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직접 개입할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고위 관료들은 최근 잇따라 우크라이나에 내전이 발생할 경우 친러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군사개입을 통해 친러 정권의 복원을 추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미국은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군사개입 가능성에 대해 단호하게 맞서고 있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3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경우 '중대한 실수'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이 심화할 경우 이란 핵협상 같은 민감한 다른 이슈들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