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세계 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결코 예외가 아니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왔다. 지난해 마지막 기준금리를 결정한 12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자리에서다.
최근 한은이 공개한 12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한 금통위원은 "미국 등 주요국의 거시경제학계가 화두로 삼은 세계 경제의 장기 저성장 가능성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요사이 학계에선 저성장의 추세적 흐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적인 저성장의 원인은 2008년 금융위기라는 분석이 우세했지만, 최근 들어선 만성적인 수요 부족이 저성장을 부르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학자들은 특히 기업의 투자회피 성향에 주목한다. 안팎의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미루고, 내부유보를 지나치게 확대해 '글로벌 저축과잉(global savings glut)' 현상이 나타났으며, 투자 부진과 고용 부진이 수요 부족으로 이어져 저성장의 고리를 끊을 수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3월 기준 미국 기업들의 현금성 자산 규모는 2조400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2530조원에 이른다.
이 금통위원은 이런 분석이 양적완화(QE) 무용론을 설명한다고 봤다. 그는 "미국의 대규모 QE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수요 회복이나 인플레이션 압력은 나타나지 않은 가운데 자산시장에서의 버블형성과 붕괴가 반복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금통위원은 이어 "세계경제의 공급 능력과 수요 사이의 격차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돈을 쏟아부어도 물가가 낮아 세계 경제의 성장패턴이 제로섬 게임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나아가 한국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했음에도 물가상승률이 유례없이 낮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 ▲가계의 소비와 저축이 동시에 급감하는 가운데 기업이 투자부진으로 대규모 저축 주체로 등장한 점 ▲대규모 잉여저축이 경상수지 흑자의 주된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도 서둘러 대책을 찾을 때라는 주장이다.
이 금통위원은 따라서 "세계 경제의 장기 저성장 문제를 심도 있게 연구하면서, 내수중심 경제구조로 전환할 대책을 더 강하고 빠르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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