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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창조경제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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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창조경제의 딜레마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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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의 일이다.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는 국정홍보처 공무원을 대상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 언론 정책의 문제점을 추궁하고 있었다. 그때 출석한 해당 공무원이 "우리에게는 영혼이 없다"라고 대답해 장안의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영혼 없는 공무원론은 그 후 정부 관료의 기회주의성을 비난하는 말로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영혼 없는 관료'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이론을 너무도 잘 이해한 말이다. 19세기 근대 관료제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막스 베버는 합리적이고 비인격적인 규칙에 따라 움직이며, 전문성을 가진 집행기구로서의 관료제를 주창했다. 이런 베버의 이론은 현대 국가의 골간을 이루는 행정조직의 설계 원칙으로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관료에게 영혼이 없다는 말은 부끄럽거나 비난받을 단어가 아니라 베버의 이론을 가장 잘 이해한 명언(?)인 것이다.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료가 모순되는 정책을 충실하게 집행하는 것은 관료제의 본질에 충실한 것으로 비난의 대상이 아닌 칭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오히려 우리가 우려하고 걱정해야 할 것은 관료가 관료로서의 기능을 넘어서는 역할을 하는 경우이다.


최근 박근혜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창조경제를 둘러싼 관료의 역할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지난달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은 창조산업 사업 330개 중에서 이명박 정부의 녹색사업과 유사한 사업이 전체 예산 규모의 47.7%라고 지적했다. 전체 사업의 절반이 내용은 같으나 이름만 다른 사업이라는 것이다. 특히 미래창조부 사업의 경우는 무려 63%의 사업이 이전 정부사업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중복성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로 가장 창조적이지 않은 관료들에게 가장 창조적인 역할을 요구한 결과로 나타난 문제이다. 여기서 문제는 사업의 중복성만은 아니다. 창조사업을 기획하고 예산을 분배하며 관리하는 기능이 전부 관료들의 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또 창조란 시간이 걸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1990년대 후반 영국 정부가 창조산업을 주창하면서 초등학교에서 성인교육까지 영국 전체의 교육 과정 개혁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창조산업이 몇몇 단기적 사업으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영국정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관료들의 창조사업은 너무나 조급하다


창조경제란 기존에 존재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창의적인 활동의 결과물이다. 창조적 활동은 결정된 사안을 집행하는 기계적 행위와 전혀 다르다. 모호하고 방향을 알 수 없고, 때로는 오랜 시간 실패를 거듭해야 하며, 실패할 경우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창조적 활동이다. 이러한 창조경제의 특성은 관료제의 본질과 다르다. 관료는 정해진 정책의 집행 주체이지 정해지지 않은 사안을 창조하고 기획하는 것이 아니다. 이점에서 지금 추진 중인 창조경제는 추진 주체의 측면에서 자기 모순에 빠져 있다. 가장 창조적이지 않은 관료가 가장 창조적인 활동의 주체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가장 절박한 혁신의 과제를 안고 있는 주체는 삼성전자일 것이다. 2011년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2 공개 행사에서 삼성전자를 '카피캣'이라고 공격했다. 카피캣을 우리 말로 번역하면 흉내쟁이 고양이 정도의 수준이지만 영어적 의미로는 상대의 지적재산을 훔치는 파렴치한이라는 치욕적인 뜻이 숨어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이미 무덤에 들어가 있는 스티브 잡스의 조롱을 불식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우수한 인재가 모여 있다는 삼성전자조차도 아직 세계가 인정하는 창조적인 제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것을 하는 창조란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창조 경제의 성패는 민간의 창의적 에너지를 어떻게 결집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과연 관료가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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