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전도연은 ‘집으로 가는 길’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몸을 못 가눌 정도였다. 본인이 연기한 영화를 보고 우는 것은 ‘주책’이란 생각이 들었기에 창피했다. 하지만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가 없었어요. 촬영 당시의 느낌도 떠올랐고 극중 정연의 가족이 힘든 모습을 보면서 복합적인 감정이 생겨났죠.”
최근 아시아경제와 만난 전도연은 ‘집으로 가는 길’에 대한 애착을 숨기지 않았다. 열심히 했고, 많은 관객이 진심을 알아주길 바랬다. 그는 연기를 할 때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 인물을 잘 표현해 낼까에 대해 고민한다고 털어놨다.
“도미니카에서 3주간 촬영했는데 그 안에 극중 인물의 2년이라는 시간이 있어야 했어요. 아주 집중돼있고 예민해 있었죠. 나와 전혀 나와 다른 인물은 말 그대로 ‘연기’를 해야 해요. 그러나 정연이란 인물은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어요. 촬영하면서 저와 비슷한 면들을 조금씩 찾다가 어느 순간 가까이 와 있는 느낌이 있었죠.”
도미니카 촬영 당시 전도연은 심리적, 육체적인 고생을 많이 했다. 수감자들이 놓인 교도소에 가서 함께 연기를 하고 구르고 뛰어야 했다. 외국 배우들과 말도 통하지 않았다. 극중 정연처럼 전도연 역시 한없이 낯선 상황을 경험해야 했다. 프랑스의 유명한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했지만 당시엔 그들이 유명 배우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후에 몹시 아쉬웠다며 웃어보였다.
사실 전도연은 ‘집으로 가는 길’의 완성된 시나리오를 받기 전, 좀 더 과한 기획단계의 시나리오를 봤다. 방향성이 잡히지 않은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 스스로도 헷갈렸단다.
“이걸 어떻게 한 영화로 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완성된 시나리오는 모나지 않게 잘 뭉쳐져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잘못을 꼬집는 영화였으면 좀 더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그렸겠죠. 그러나 시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야기를 그린 영화에요.”
배우 선배인 방은진 감독과의 호흡도 처음엔 쉽지 않았다. 차라리 나이 차이가 아주 많이 나면 편할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어서 더 어려웠다. 얼마 전까지 연기를 했던 배우이기도 하고. 선배로 대할지 감독으로 대할지 애매했다.
“사실 전 아주 직설적이에요. 돌려서 얘기를 못하는데, 방감독님과는 뭘 하나를 얘기해도 많이 돌려서 했던 것 같아요.(웃음) 요지는 ‘이거만 바꿔도 될까요?’인데, 장황하게 이것 저것 얘기한 뒤에 검토해 달라고 조심스레 말했죠.”
전도연과 대화를 나누던 중 또 한 가지 재미난 부분이 있었다. 꿈이 톱스타가 아닌 현모양처였다는 것. 그는 절실하게 꿈꾸던 ‘무엇’이 없었노라고 고백했다.
“결혼을 일찍 해서 현모양처가 되는 게 꿈이었죠. 절실하게 되고 싶은 게 없었어요. 전 아주 평범했어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요.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만 늘 생각했죠.”
“저는 공짜도 싫어해요.(웃음) 정말 갖고 싶으면 돈 주고 사지, 뭘 얻으려고 일부러 가고 그러지 않아요. 아쉬운 소리 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내가 하든 남이 하든 다 별로인 것 같아요.”
긴 시간 동안 배우의 길을 걸어온 전도연. 그 역시 자신의 삶이 이렇게 펼쳐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어떠한 배우가 되겠다는 꿈도 없었고, 오랫동안 하려고 마음 먹지도 않았기 때문.
“처음부터 이 일을 너무 좋아한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것을 느꼈죠. 지금은 일을 너무 사랑해요. 전에는 나와 배우 전도연을 분리시키려고 했어요. ‘이게 진짜 나고, 배우 전도연은 내가 아니야’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왜 그랬지? 지금 생각하면 우습죠.”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는 전도연의 얼굴에서 평온한 기운이 흘렀다. 나이가 무색한 동안이지만, 숨길 수 없는 눈가의 잔주름도 그녀의 얼굴에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었다. 자연스러워서 더욱 아름다운 전도연은 시간이 흐를수록 빛나는 ‘명품 배우’임에 분명했다.
유수경 기자 uu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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