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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메신저]장갑 디자인도 고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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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메신저]장갑 디자인도 고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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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장갑을 껴야할 시절이 닥처옵니다'로 시작된 장갑에 관한 기사가 1933년 10월 14일자 동아일보에 실렸다. 그 시절에도 유행의 근원지인 파리의 쇼윈도우에 새로운 장갑들이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는 대목도 있다. 아울러 장갑의 역사와 예절에 관해 그 방면에 정통한 사람들이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한 내용들 중 재미있는 몇 가지를 소개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삶의 도구나 양식이나, 그것들에게 갖는 호기심 등을 풀어가는 방법이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너무도 비슷하다는 점에서 야릇한 흥미가 느껴진다.


장갑은 원래 추위를 막거나 일을 할 때 손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됐으나 세월과 더불어 다양한 용도로 변형되고 발전돼 왔다. 현존하는 가장 오랜 장갑은 고대 이집트 투탕카멘(Tutankamen) 왕의 무덤에서 발견 된 것이다. 그리스 '호머'의 작품에도 장갑이 등장하고,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때 동행했던 부하 중 한사람이 종들에게 장갑을 끼고 요리를 하게 했다는 설도 있다. 로마인들이 뜨거운 음식을 먹기 위해 장갑을 꼈다는, 그리고 격투사들이 이기기 위해 스파이크 달린 장갑을 끼고 경기를 했다는 이야기들까지, 길고 긴 장갑의 사용 역사와 그 용도의 다양함을 전하고 있다.

중세에 들어 장갑은 권력이나 위엄을 상징하는 동시에 계급을 결정하는 도구였다. 왕족과 귀족, 그리고 주교가 손가락장갑을 사용했고 낮은 계층의 사람들은 벙어리장갑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귀족의 장갑은 금은보석 등으로 장식돼 화려하게 발전했으며 결혼 예물로 주고받는 귀한 물건이 되기까지 했었다.


지난 8일 한 방송에서 신랑 없이 장갑 결혼식으로 유럽을 제패한 막시밀리안1세(신성로마제국 황제, 재위 1493~1519)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막시밀리안1세는 카스티야-아라곤 왕국과 굳건한 동맹을 맺기 위해 자신의 딸 마르게리타와 상대 왕국의 후얀 태자의 결혼을 추진했다. 이를 알고 프랑스의 샤를 8세가 프랑스 공주와의 결혼을 먼저 성사 시키려하자, 거리상으로 프랑스 보다 멀리 있는 막시밀리안1세는 궁리 끝에 신랑의 장갑을 놓고 먼저 결혼식을 치렀다.

그 무렵 프랑스의 커져가는 세력을 두려워했던 유럽 왕국들은 마르게리타와 장갑의 결혼식을 인정했다. 당시 결혼식 때 나눠 끼는 장갑은 결혼을 상징하는 물건이었으므로 이를 이용해 딸을 결혼시킨 것이었다. 이 장갑 결혼식이 막시밀리안1세가 유럽을 재패하는 결정적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장갑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물건이 된 것이다.


장갑은 여성들의 소중한 액세서리가 됐다. 19세기 들어 상류계층의 여성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장갑을 바꿨다. 황후 조세핀은 한번 쓴 장갑은 다시 사용하지 않았고, 1000켤레 이상을 사용했다고도 한다.


21세기 들어 세계적 디자이너들이 장갑을 다시 패션의 중요 아이템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장식성은 물론이며 에로티시즘, 유희성 등의 상징적 의미까지를 표현하면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다가가 장갑으로 경제적 이익까지를 창출하고 있는 세계적 디자이너들도 늘어나고 있다. 추울 때 끼는 방한용을 넘어 패션의 일부가 된 이 장갑을 더욱 활용할 수 있도록 우리도 지혜를 짜봐야 할 것 같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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