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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4장 흐르는 강물처럼(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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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4장 흐르는 강물처럼(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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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莊周)는 꿈 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다가 깨어났다. 그리곤 중얼거린다.

‘지금 나는 과연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지금 내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유명한 장자몽(莊子夢)이다.


배문자가 갖다 준 커피를 후후거리면서 마시며 하림 역시 잠깐 그런 착각에 빠져들었다. 불과 며칠 전, 살구골에서 만났던 이장이나 소연이, 남경희, 수관선생 같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지금 자기 앞에는 그 옛날 애인이었던 배문자가 앉아 있었다. 불과 며칠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살구골 사람들은 전생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곳에 가면 또 이곳에서 만난 배문자가 그렇게 될 것이었다. 무엇이 더 현실적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면 둘 다 모두 꿈인지도 모른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뜨거운 커피를 다 마신 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 있어?” 배문자가 걱정을 해주었다.


“응.” 하림의 답변이 신통치 않았는지 배문자는 자기 책상으로 가더니 서랍을 열고 봉투를 하나 가져왔다.


“얼마 안 돼. 알다시피 요즘 출판사 경기가 안 좋아.”


“됐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손으로는 봉투를 받았다. 얇은 걸 보니 일이십만원 되는 것 같았다.


“공짜는 아니야. 나중에 인세에서 제할 거니까.”


“알았어. 고마워.”


“좀 잘 살어, 인간아.” 배문자가 조금 코맹맹이 소리가 되어 말했다. 지난 겨울에 했던 소리와 꼭 같았다. 그래도 그녀는 의리가 있었다. 요즘 세상에 그런 의리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었다.


“너두.....행복해야 해! 알았지?” 하림은 할 일 없이 웃으며 빈말삼아 큰소리로 말했다. 그리곤 등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지나가고 나면 그 뿐이라 하지만 사람이 지나간 자리엔 흔적이 남는다. 때로는 그것은 상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리움이 되기도 한다. 만나기 전에는 몰랐는데 막상 헤어져서 나오려니 이상하게 무언가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어쨌거나 숙제는 하나 마친 셈이었다.


<전쟁이 인간의 진화에 미치는 영향> 이라니.... 생각하면 우스웠다.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 만화에 흥미를 가질 것인가. 진화란 무언가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원시세포인 아메바가 고등동물인 인간이 되기까지의 기나긴 과정이 진화이다. 다아윈이 진화론을 발표했을 때, 그래서 진보론자들은 환호를 했다. 인간 세상에도 원시시대에서 고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어떤 법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헤겔과 마르크스, 레닌과 마오가 그것을 만들고 실천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 세상은 온통 절망적인 전쟁 뿐이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시작한 전쟁은 세계를 공포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고,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금융 자본주의는 온 세상을 1%의 부자와 99%의 가난뱅이로 만들고 말았다. 21세기 초엽, 지금처럼 ‘위기’라는 단어가 광범위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던 때가 있었던가.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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