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중국의 경제 성장세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중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이 맥을 못 추고 있다. 일부 외국계 기업들은 인력 축소에 나서는 실정이다. 근로자들에 대한 고용 보장이 부실하다 보니 능력을 갖춘 인재들은 외국계 기업 보다는 중국 기업 취직을 선호하는 추세다.
◆중국 진출 외국계 기업들 감원 바람=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휼렛패커드(HP)는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의 부진 속에 중국에서도 감원을 진행하고 있다. HP는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감원을 진행하는 동안 중국 쪽은 거의 손을 대지 않을 정도로 중국 시장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국에서도 불가피하게 소수 인력의 조정을 감행했다.
존슨앤존슨은 제약쪽 영업 사원들을 중심으로 중국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으며 IBM도 중국 매출이 급감한 상황을 반영해 감원을 진행 중이다. 소프트웨어 서비스 제공업체 비스퀘어는 중국 쪽 사업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고 판단하고 베이징 사무소를 폐쇄했다.
리크루팅과 컨설팅 업체들은 이러한 외국계 기업들의 감원 한파가 오랜 기간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 두 달 안에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1~2년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채용 정보 사이트 자오핀닷컴에 따르면 올해 들어 외국계 기업, 특히 서방국 기업들이 채용 공고를 게시한 건 수는 지난해 대비 5% 줄었다. 이 기간 전체 채용 공고가 30% 가량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에반 궈 자오핀 최고경영자(CEO)는 "외국계 기업들이 이제 더 이상 공격적으로 중국 시장을 확장하고 있지 않다"면서 "외국계 기업들이 좀 더 신중해진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외국계 기업들의 이러한 변화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갈수록 둔화하고 있으며 물가와 인건비 상승으로 중국 사업에서 예전처럼 높은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중 미국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미국기업들 가운데 29% 정도는 지난해 매출이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그 비율은 2011년 19% 보다 높아졌다. 주중 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도 유럽 기업 가운데 64%만이 중국 시장에서 지난해 수익을 남겨 그 비율이 2011년 73%에서 낮아졌다고 밝혔다.
◆중국 고급 인력의 외국계 기업 선호는 '옛 이야기'= #. 영국의 명문대에서 엔지니어 석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35세 원야징씨는 외국계 기업들이 선호하는 스펙을 모두 갖추고 있는 '인재'지만 지난 7월 중국 기업에 입사를 결정했다. 외국계 기업들은 실적과 성과에 따라 쉽게 인력 조정을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통상적으로 큰 사고만 치지 않는 다면 쉽게 사람을 내치지 않는다는 점이 결정의 가장 큰 이유였다.
중국에서 외국계 기업들이 맥을 못 추는 사이에 중국의 젊은 층 능력 있는 인재들은 외국계 기업 보다 중국 기업 입사를 선호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CEB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중국 구직자들 가운데 47%가 중국 기업 입사를 희망하고 있다. 외국계 기업 입사를 희망하는 사람은 24%에 불과하다. 5년 전 만 해도 42%가 외국계 기업을 선호했으며 자국 기업에 입사를 희망하는 사람은 9% 뿐이었다.
중국에서 외국계 보다 자국 기업 선호 현상이 강해진 데에는 그동안 높은 보수와 성과급, 우월한 복지제도를 제공했던 외국계 기업들의 매력이 떨어진 탓이다.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외국계 기업에 버금가는 높은 임금을 제시하는 중국 기업들도 많아지고 있으며 고용 안정까지 보장하고 있다. CEB의 브래드 아담스 아시아 지역 대표는 "오랫동안 유지됐던 '외국계 직원' 프리미엄이 이제는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일부 외국계 기업들은 중국 기업을 선호하는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임금인상폭을 높이는 한편 연봉 조정도 기존 연간 단위에서 분기 단위로 조정하는 노력까지 하고 있다. 프록터앤갬블(P&G), 제너럴 일렉트릭(GE), W.R.그레이스, 로버트 월터스 등이 중국 기업과 경쟁하며 인재 유치에 적극적인 외국계 기업들이다.
외국계 기업들은 최근 임원급 마저 중국 기업에 빼앗기는 분위기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핵심 임원이었던 휴고 바라 전 구글 부사장은 올해 여름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小米)로 자리를 옮겼다.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華爲)도 올해 에릭슨의 임원으로 있던 CT.존슨을 스카우트 했으며, 노키아 출신인 콜린 자일스, 영국 정부의 최고정보책임자였던 존 서포크 등을 경영진으로 영입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