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노미란 기자]진로를 선택하는 순간, 사랑에 실패한 후 또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을 때, 지나친 실수를 저질러 머리속이 하얗게 변하는 찰나,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여자 배우처럼 예뻐지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가서 다른 현재를 꿈꾸는 것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만은 아닌 모양이다.
지난달 28일에 개봉한 영화 ‘열한시’는 중력 이상 현상이 나타나는 러시아의 블루홀을 가정해서 '타임머신'을 만들수 있다고 전제한다. 이 블루홀에서 입자 충돌을 가속화하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설정한다. 시간 여행의 통로인 블루홀은 블랙홀 이론의 웜홀의 일종인데 짧은 웜홀의 수명을 코어에너지로 극복해 타임머신을 작동시킨다.
이 원리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이론을 응용한 것이다. 호킹은 우주탄생의 비밀을 밝히며 '시간의 방향을 바꾸는 가정'을 사용한다. 기존 이론에 의하면 거대한 물체가 사라지는 구멍이 공간 속에 존재한다. 이는 물질이 유에서 무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킹은 이 이론을 뒤집어 '시간의 방향만 거꾸로 돌린다면' 반대로 무에서 태어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의 방향만 바꾸면' 블랙홀은 만물을 빨아들이는 폭발과 함께 공간, 물질, 시간을 뿜어내게 된다. 이것이 우주의 탄생을 증명하게 되는 호킹의 이론이다. 이 이론에서 시간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 시간 여행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속에서 시간 여행의 끝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바닷속에 위치한 러시아의 '에너지J' 연구소에서 타임머신을 연구하는 우석(정재영 분)은 아끼는 후배 영은(김옥빈)과 함께 타임머신 ‘트로츠키’호에 탑승해 24시간 후인 12월 25일 오전 11시로 이동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하루 뒤의 미래에서 가져온 CCTV영상이 오히려 현재를 망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미래를 알고 있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이론의 출발점을 제공한 호킹이 '타임머신'의 가능성에 대해 직접 언급한 적도 있다. 호킹은 지난 9월에 발간한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에서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그의 책에는 "타임머신 지평을 통과해 타임머신에 진입하려는 사람이나 우주선은 복사(輻射) 번개에 맞아 흔적도 없이 파괴될 것이다. 이것은 과거를 집적거리지 말라는 자연의 경고일지도 모른다"고 씌여있다. 마치 루게릭병 진단으로 전신이 마비됐던 호킹이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충고하는 듯하다.
노미란 기자 asiar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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