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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토리]20년 '함께'의 힘···마을을 명물로 만든 대단한 '성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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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자녀 양육 고민하던 부모들이 나서서 '공동육아' 시작한 것이 성미산 마을의 시초

[서울스토리]20년 '함께'의 힘···마을을 명물로 만든 대단한 '성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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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서울 마포구 성미산의 해발은 약 66m, 면적 12만㎡(약 4만평)이다. 도봉산, 북한산 등 해발 700m를 훌쩍 넘기는 다른 산에 비하면 '산'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야산에 가깝다. 예전에는 산이 성처럼 둘러싸여 있다고 해서 '성산'이라고도 불렸고, '성메', '성미' 등의 우리말 이름도 있다. 성산동, 서교동, 망원동, 합정동 일대를 아우르는 성미산을 한번 둘러보는 데는 30~40분이면 충분하다. 오르는 길도 듬성듬성 나 있고, 마땅한 등산로는 더더군다나 없다. 딱히 산 정상이라고 할 만한 데도 없다.

 

11월 중순 늦가을에 찾은 성미산 곳곳의 샛길에는 낙엽이 쌓여 또 하나의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는 노랗고 빨간 단풍들과 간혹 보이는 초록의 나무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들이 묘한 풍경을 연출했다. 경성중고등학교 사거리에서 출발해 성미산 약수터를 거쳐 '서울 시내 우수 조망대' 표시가 있는 봉우리까지 올라가는 그 짧은 오르막길에도 여기저기 갈림길이 나 있어 산책하는 소소한 재미를 준다. 쌀쌀한 날씨에도 곳곳에 배치된 운동기구에서 몸을 푸는 주민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동네 뒷산 같은 작은 규모이지만 성미산은 마포구에 있는 유일한 자연숲으로 이 지역의 '허파' 구실을 한다. 이미 인근에 있는 와우산, 노고산 등이 주거지 개발사업 등으로 산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에 성미산의 보존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성미산은 북한산 지맥이 백련산을 거쳐 한강으로 이어지는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어 예로부터 한강을 찾는 철새, 맹조류 등의 주요 서식처로 기능해왔다. 천연기념물인 소쩍새와 붉은배새매, 서울시 보호종인 오색딱다구리와 꾀고리, 박새 등도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같은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에는 서울시가 성미산을 절대적으로 보존해야 하는 비오톱(Biotope. 도심 속에서 야생동물들의 공동 서식이 가능한 자연환경) 1등급지로 지정하기도 했다.


[서울스토리]20년 '함께'의 힘···마을을 명물로 만든 대단한 '성미산' 성미산 학교의 모습. 학교 입구에 적혀있는 낙서가 눈에 띈다.



그러나 성미산이 유명하게 된 것은 이 같은 자연환경이 아니라 '성미산 마을 사람들'이 덕분이다. 약 100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성미산 마을은 행정구역상의 명칭은 아니지만, 성공한 마을 공동체의 롤모델이 됐다. 이곳에 마을이 처음 꾸려지게 된 것은 1994년 무렵이다. 자녀들의 양육을 고민하던 부모들이 모여서 '공동육아'를 하게 된 것이 시간이 흘러 느슨한 형태의 마을공동체로 발전했다. 당시 주민들은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어린이집의 전세금을 모으고, 운영에도 직접 참가했다. 이런 과정에서 성미산은 마을 주민들의 공동육아 교육의 장이자 어린이들이 계절마다 자연학습을 하며 뛰노는 놀이터가 되었다. 지난해 성미산 마을 자치모임 '사람과 마을'이 주민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공동체 관계 형성에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교육/육아'를 꼽았다.

 

다 같이 아이 키우기에 나섰던 주민들은 곧이어 반찬가게, 옷가게, 카페, 극장, 학교 등을 만들며 더 큰 공동체로 나아갔다. '성미산로 6길'이라고 쓰인 팻말이 달린 골목 초입에 가면 '작은나무'라는 카페가 나오는데, 이곳은 마을 주민들이 공동 출자해서 운영위원단을 만들어 메뉴와 재료를 결정한다. 카페 곳곳에 주민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데, 누구나 편하게 오고갈 수 있어 '동네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한다. 친환경 마을 식당인 '성미산 밥상', 마을을 대표하는 협동조합인 '두레생협', 동네 책방인 '개똥이네 책놀이터', 2009년에 개관한 마을극장, 안쓰는 물건을 되파는 '되살림가게' 등도 마을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서울스토리]20년 '함께'의 힘···마을을 명물로 만든 대단한 '성미산' 성미산 마을 초입에 있는 '작은 나무' 카페. 주민들이 직접 운영에 참여한다.



2004년 설립된 '성미산 학교'는 국내 첫 12년제 대안학교다. 공동육아로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주민들이 뜻을 모아 아예 대안학교를 만든 것이 성미산학교다. 다른 학교들처럼 성적위주의 경쟁을 강요하지 않고 '마을이 학교고, 학교가 마을이다'라는 모토로 생태주의 철학을 가르친다. 학교 입구에는 자전거가 한가득 주차돼 있고, 학교 벽면에는 'So Everything that makes me whole freedom(그러므로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이라고 적혀 있는 낙서가 눈에 띈다. 이제 공동육아 1세대 사람들은 50대의 중년이 됐고, 마을의 손에 길러진 아이들은 20대 청년이 됐다. 최근 마을 이야기를 다큐 로 만든 강석필 감독은 "마을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내가 무엇을 하든 행복할 수 있다'는 자기 긍정과 자존감이 정말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미산과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면 이곳에도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는 흔적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곳곳에서 나부끼고 있는 '홍대 외국인 기숙사 신축 반대' 플래카드가 그 증거다. 2010년 홍익대 재단이 성미산 일부를 깎아서 초중고 학교를 지어 마을 사람들과 충돌을 빚었는데, 이번에는 대학 외국인 기숙사 신축 문제로 갈등을 보이고 있다. 홍익대학교재단은 지난해 8월 기숙사 해당 부지 형질 변경 허가를 받았다. 올해 2월에는 마포구 건축 심의를 통과해 현재 마포구청장의 건축허가만 남은 상태다. 주민들은 "홍익대학교재단이 헐값에 사들인 성미산에 많은 것을 우겨넣기 위해 짓고 올리고, 생태계를 파괴하고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는 2017년까지 총 900여개가 넘는 마을공동체를 조성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데 성미산을 마을 공동체의 표본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성미산의 현실은 마을 공동체, 더 나아가 지자체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를 보여준다. 개발과 자본의 논리가 끊임없이 침투하는 상황에서, 성미산과 그 산 주변을 터전으로 삼은 공동체의 생활을 지켜내는 것은 아직까지 주민들의 몫으로만 남겨져있 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는 자신의 저서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래세계의 희망은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 성미산은 그 가능성에 대한 물음과 답을 함께 던지고 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사진=백소아 기자 sharp2046@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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