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 대학에서 영문과를 졸업한 마리나 왕씨는 항저우(杭州) 소재 영국 회사에서 일하면서 영어를 사용하는 일이 많았지만 최근 회사를 고향인 후베이(湖北)성 내 중국 은행으로 옮기면서 영어 쓸 일이 전혀 없어졌다.
중국에 불던 영어 배우기 열풍이 한풀 꺾이는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어를 배우는 중국인 수는 4억명에 이른다. 2011년 중국에서 영어 교육 시장 규모는 463억위안(약 75억달러) 정도다. 대입시험에 영어 과목은 필수이며, 어려운 대입시험을 통과하고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졸업 시즌만 다가오면 대학생들은 졸업 요건에 필요한 영어 4급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밤새 벼락치기 공부를 한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중국 내부적으로 비효율적이고 과도한 영어 교육에 대한 각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대학들은 '시험 영어'에 대한 부담을 낮추려고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올 초 베이징이공대학(北京理工大學)을 포함한 일류 대학 상당수가 일부 학과에 대해 신입생 모집 전형에서 영어 성적을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달에는 베이징시 교육당국이 공교육의 주입식 영어 실태를 비난하며 교육기관들이 영어 성적에 무게를 덜 두는 쪽으로 제도 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산둥(山東)성과 장쑤(江蘇)성도 영어 공교육 시험에 대한 제도 변경을 검토중이다.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으로 중국 소비자들을 주 고객층으로 하는 중국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굳이 영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도 영어 열풍에 찬물을 끼얹는 요인이다.
책 '중국에서의 영어(English in China)' 저자이자 홍콩에서 교육 컨설턴트로 일하는 데이비드 그라돌은 "중국에서 영어의 위상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영어 시험이 영어 열풍을 이끈 주요 요인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중이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영문판 자매지 글로벌타임스는 지난달 사설에서 "중국에서 영어 마니아들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줘야 할 시간"이라면서 과도하게 진행하거나 너무 이른 나이에 시작하는 영어 교육에 대한 부작용들을 언급했다.
중국인의 영어실력은 아시아 지역에서 하위권에 속한다. 글로벌 어학교육기업인 EF(Education First)가 최근 비영어권 국가 60개국의 75만명을 대상으로 ‘EF 영어능력지수(English Proficiency Index)’를 발표한 결과 중국은 34위로 집계됐다. 중국은 우수, 양호, 보통, 미흡, 불량의 5개 그룹 가운데 '미흡' 평가를 받았다. 아시아 지역에서 인도네시아(25위,보통), 베트남(28위, 보통) 보다 낮은 평가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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