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금융'은 문자 그대로 '돈의 흐름'을 뜻한다. 흐름의 방향과 정도에 따라 정상적일수도 있고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금융시장에서 돈의 움직임이 원활치 못하면 자금시장 경색이 나타나고 지나치게 빠르면 자산가치보다 커지는 거품이 형성된다. 또 한쪽으로 편중되면 상대적으로 자금 움직임이 덜한 쪽에서는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게 된다. 효율적 배분을 위한 장치가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다.
'정보의 비대칭성의 결과'에 대한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의 관심사는 사회적인 불평등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득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깊어지고 있는데, 그 근원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스티글리츠 교수가 찾은 자산 양극화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주요한 원인으로 꼽은 것은 정부 정책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정부, 국회 등 권력이 자리잡고 있다고 판단했다. 정부와 같은 국가권력이 기업, 부유층 등 소위 가진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불평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결국 사람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요즘 국내 금융시장을 보면 스티글리츠 교수의 분석이 종종 겹쳐 보인다. 자금이 한쪽으로만 쏠리는 금융의 양극화가 정책 보다는 사람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에서다.
금융시장의 왜곡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시중은행 같은 민간 영역은 속성상 그렇다 치더라도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할 정책금융은 우량기업을 선호한다. 중소기업의 기술력으로 신용을 보증하는 정부 산하 금융기관은 기업의 재무상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게 현실이다. 은행에서 자금을 얻기 힘든 기업은 시장에서도 직접 돈을 끌어들이기 어려운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이 정책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일까. 금융정책은 오히려 과도하다고 할 정도로 다양하다. 소비자보호는 기본이고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비전까지 폭넓은 영역에서 갖가지 대책이 마련돼 있다. 기업지원, 서민금융만 하더라도 비슷한 상품이 서너종이다.
정책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는 정작 이를 관리감독하는 주체의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더 크다. 앞에서는 자금 지원을 받기 어려운 부류를 도우라고 부추기지만 정작 자금 회수를 못해 큰 손해가 발생하면 질책한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일부 국회의원들은 정책금융기관의 손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기업이나 개인을 돕기 위한 게 공적 금융기관의 역할이라고 본다면 손해가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를 용납하지 않는 게 오히려 현실을 무시한 처사다.
금융기관의 장(長)을 비롯해 구성원들이 자리라도 보전하려면 본연의 업무 보다는 이익을 먼저 고려할 수밖에 없다. 정책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도 여기에 있다.
국회의 국감일정이 조만간 마무리되면 금융권의 관심은 우리나라 금융의 부가가치를 10년내 10%로 끌어올린다는 금융산업 비전에 쏠릴 전망이다.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좋지만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먼저 필요한 시점이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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