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을 사서 '폐협회'에 기증한다. 폐협회는 탄소배출권을 거래하지 않고 소각하니 결국 전체 탄소배출량은 줄어들게 된다. 탄소배출권을 살 재원은 하루에 껌을 일정 갯수 이상 씹을 권리를 팔아 모은다. 미국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환경보호 과제에서 우수 사례로 소개된 내용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과제라면 기껏해야 빈 병이나 폐지를 모아 재활용을 하는 수준을 생각했는데 탄소배출권을 기부할 생각을 하다니, 게다가 재원마련을 위해 옵션(껌 씹을 권리)을 매각했다는 아이디어에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이 얘기를 전해준 금융투자업계 고위 임원은 10년전 미국에 있을 때 초등학교 5학년이던 아들의 과제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투자하고 싶은 종목을 정하고, 한달간 그 종목의 주가를 매일 기록하고, 그 종목을 선정한 이유도 기술하는 것이었다. 중간에 종목을 교체할 경우, 그 이유도 설명해야 했다. 이 과제에서 중요한건 주가의 등락이 아니라 종목선정 이유의 설명과 꼼꼼한 기록이라고 한다.
두 가지 사례를 듣고 나니 몇해 전 어린이용 재테크 책을 써보겠다고 서점에 가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생용 교과서를 살펴보던 기억이 났다. 재테크 관련은 커녕 일반적인 경제에 대한 내용도 찾기 힘들었다. 중학교 2~3학년 과정 쯤에 몇줄 설명한 게 경제관련 내용의 전부였고, '정치경제'란 과목이 있는 고교 과정에서도 경제에 관련된 내용은 극히 초보수준이었다. 당연히 금융이나 투자에 관한 내용은 눈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요즘 동양증권의 동양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불완전 판매 문제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그룹의 오너를 비롯한 경영진이 회사가 망할 것을 알고도 회사채와 CP를 팔았으니 오너와 그룹측이 책임을 지라는 게 투자자들의 요구다. 이들은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금융당국에까지 책임을 묻고 있다.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 문제는 규제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유동성 위기로 막판에 몰린 회사의 채권과 어음을 안전하다고 선전하며 판매한 행위가 정당화될 수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금융회사 직원들이 사탕발림을 한다고 해도 판단은 본인이 하는 게 투자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전 동양의 CP 금리는 6%대였다. 동양 다음 타자로 지목될 정도로 역시 재무구조가 건전하지 않은 다른 그룹 계열사의 CP 금리는 3~4%대였다. 금리 하나만으로도 동양의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었다는 얘기다.
금융과 투자에 대해 뒤쳐진 것은 일반투자자뿐 아니다. 금융투자회사들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이나 금, 농축산물 등과 관련한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들수 있는데도 시장이 작다는 등의 이유로 망설인다. 주식시장까지 투기로 보는 정치권은 파생상품 시장은 아예 도박장 수준으로 제어하려고 한다.
초등학교때 껌 씹을 옵션을 팔아 탄소배출권을 사겠다는 아이들이 커서 금융상품을 만드는 곳과 경쟁이 안 될수밖에 없다. 폐지를 줍고, 빈 병을 재활용해 자연을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금융과 투자는 '돈놀이'나 투기가 아닌 '창조적인 산업'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필수 기자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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