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못잡아도, 불안 잠재워
2000억원대 손실 95% 줄여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건설 계열사 ㈜한라(현 한라건설)를 정상화하기 위해 자동차부품 계열사 만도의 대표이사를 그만둔 지 오는 30일로 1년을 맞는다.
그는 지난해 10월 만도 대표이사 자리를 전문경영인에게 넘기고 ㈜한라 대표이사 자리는 유지하면서 건설경기 불황 극복에 총력을 기울였다. 건설경기 불황이 워낙 심해 정 회장의 노력ㆍ의지만으로 넘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그래도 선방했다는 평가다.
정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긴 만도의 경우 3ㆍ4분기 매출액은 1조363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15% 이상, 영업이익은 711억원으로 같은 기간 126% 이상 늘었다.
반면 정 회장이 직접 챙기고 있는 ㈜한라의 성적표는 아직 신통치 않다.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건설경기부진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2022억원에 달하던 영업손실은 올 상반기 들어 106억원 수준으로 줄었지만 아직 악화된 재무상태를 해소하진 못했다.
오너가 직접 경영현안을 챙기면서 회사의 의사결정 속도는 빨라졌다. 지난 7월 금융당국이 도입한 회사채 신속인수제의 경우 한라건설이 첫 '수혜'를 입었다. 이 제도는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의 자구노력을 전제로 회사채 차환발행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는 데 일조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그간 기업들이 낙인효과를 우려해 거의 신청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정 회장의 결정은 신속했다.
시장의 불안을 잠재재우는데도 정 회장의 역할이 컸다. 지난 4월 한라건설 유상증자를 추진할 당시 그룹 차원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둘러싸고 회사 안팎에서는 반발이 컸다. 건설경기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룹에 손해를 끼칠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정 회장은 한달여 후 "추가 지원은 없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혀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한편, 빠듯한 자금사정을 감안하면 과거 그룹의 주력계열사였다 외국계 자본에 넘어간 한라공조(현 한라비스테온공조)를 다시 찾아오는 문제는 당분간 논의선상에 올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라그룹은 내달 말 준공할 그룹 연수원의 이름을 한라인재개발원 운곡관으로 결정하고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다. 연수원에는 회사의 초기부터 현재까지를 기록한 역사관이 들어선다. 정 회장은 이달 초 회사 설립 51주년 기념식에서 "'시련의 시기'는 아직 진행중이지만 스스로 이겨내고 떨쳐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시련은 우리를 단련시키고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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