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짙은 김포공항, 가로등도 내 마음같이…"
대중가요도 울었던, 대한민국 하늘 門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저 멀리 유려한 곡선을 뽐내며 두 날개를 펼친 물체가 상공을 가로지른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던 한 마리 새는 높이, 더 높이 올라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다. 끝 모르고 하늘로 치닫는 비행을 넋 놓고 올려다보는 사이 눈앞에는 어느새 광활한 아스팔트 활주로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위, 떠오를 채비를 하는 또 다른 새들이 하늘 여행에 동행할 손님을 태우고 서서히 어깨를 펴기 시작한다.
떠난다는 설렘과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교차하는 곳. 떠나보내야 하는 안타까움과 만남의 기대감으로 가득 찬 공항은 굉음을 내며 울부짖는 비행기의 포효마저 아득하게 만든다.
오늘도 하늘로 향하는 새들을 품으며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받아들이는 곳, 김포공항. 대한민국 대표 공항으로서의 '영화(榮華)'는 이제 옛일이 됐다. 비행기의 바퀴소리와 엔진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는 예전만 못하다. 적잖은 서울 사람들의 마음속에 김포공항은 아직도 서울의 관문, 대한민국의 관문이지만 옛 기억을 뒤로하고 김포공항은 이제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1958년 국제공항 지정, 김포전성시대 막 올라
1996년 세계 9위권 공항 발돋움…한국의 관문 꿰차며 20년 넘게 질주
김포공항의 '탄생'은 우리 역사의 '슬픔'과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 비행장이 등장한 것은 1916년 10월, 일본 육군이 여의도에 간이 비행착륙장을 만들면서다. 이후 1939년 전쟁 수행을 위해 또 다른 훈련장이 필요했던 일본이 가미카제 특공대를 위한 비행장을 당시 경기도 김포군에 건설하면서 김포공항이 만들어졌다.
광복 이후 공항의 관할권은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미군에로 갔다. 1954년부터 미군이 민간항공기 운항을 허용하면서 본격적인 하늘길이 열렸고, 1958년 정부가 관리권을 이양받는 협정을 체결하면서 김포공항은 대통령령에 의해 국제공항으로 지정됐다. 그해 3월 민간 비행장으로 이용되던 여의도공항의 여객기가 모두 옮겨오면서 본격적인 '김포 전성시대'는 막을 올린다. 김포공항은 기다렸다는 듯 많은 사람을 맞아들이고 내보냈다.
1970년대 외화를 벌기 위해 머나먼 독일 땅으로 떠나야 했던 광부와 간호사, 중동과 오지의 땅으로 흩어졌던 해외 파견 노동자, 1987년 목숨을 걸고 남한 땅을 밟은 탈북 가족,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잊지 못할 영광을 안은 주역들 모두가 이곳 김포를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김포공항개장 당시 행사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부터 서슬 퍼런 권력을 자랑하던 3·4·5공화국의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도 모두 김포공항을 통해 해외순방길에 올랐다.
누군가는 이곳을 마지막으로 단 한 번도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아픔을 새겨야 했고 또 누군가는 이곳에서의 영광을 평생 가슴속에 간직하며 떠올렸을 장소. 그렇게 김포공항은 저마다의 인생에 길을 터주며 한국인 그리고 세계와 동고동락했다.
한국과 바깥 세상을 쉼 없이 잇던 김포공항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던 1996년 한 해 3470만명을 실어 나르는 세계 9위권 공항으로 발돋움한다. 당시 남한의 인구가 4550만명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연인원으로 따져 인구의 76%에 가까운 사람들이 김포를 거쳐간 셈이다.
2000년대 인천국제공항에 자리 내주며 국내선 전용 공간으로 바뀌어
대형 쇼핑몰 등 상업시설 입점 부활 몸짓
국제사회에서 높아지는 한국의 위상과 함께 국민 생활수준도 높아지며 출입국자 수는 날로 급증했다. 김포공항은 큰 폭으로 증가하는 이용객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1980년 국제선 1청사를 완공한다. 출입객과 환송인파가 공항으로 몰리며 '환송ㆍ환영은 직장과 가정에서'라는 공익광고가 나올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날이 연일 이어졌다. 그러나 그 같은 '번성'이 김포공항에는 국제공항으로서의 수명을 재촉하는 결과가 됐다. 더 이상 김포공항으로는 늘어나는 승객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됐고 마침내 인천국제공항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이다.
2001년 3월 한국 최대의 국제공항이 8년여에 걸친 공사를 끝내고 '동북아시아 허브(hub)'를 표방하며 등장했고 김포공항은 국내선 전용 공항으로 순식간에 이름을 바꿔 달며 공항 내부에 '국제'라는 글자를 일시에 지워야 했다.
김포의 활주로를 날던 새들이 인천으로 둥지를 옮기면서 유휴공간은 점차 늘어났고 그 빈자리에는 극장이나 웨딩홀 등 상업시설이 대신 들어왔다. 김포~하네다 노선(2003년)을 시작으로 국제선이 일부 복항되기도 했지만 1992년 25개국 65개 노선의 국제선을 운항하던 김포공항은 현재 3개국 6개 정도의 근거리 위주 국제선만 운영하며 국제공항의 명맥을 잇는 중이다.
그럼에도 김포공항은 여전히 떠나고 들어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지난해 기준 김포공항의 국내선 이용객은 1939만명으로 인천공항 3897만명의 절반에 달했다. '신성한 나루와 포구'의 뜻을 가진 검포현(黔浦縣)에서 유래된 김포(金浦)의 지명이 그 운명을 예견한 것이었을까. 하늘길의 일부를 잃었지만 김포는 세상으로의 항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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