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가채무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어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00∼12년 연평균 국가채무 증가율은 12.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1%)보다 4.2%포인트 높다. 이런 속도로 불어나면 206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219%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외환위기 때만 해도 심각했던 기업부채와 달리 재정이 건전해 환란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국가채무 증가 속도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재정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다.
아직까지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 지난해 기준 34.8%로 OECD 평균(108.7%)의 3분의 1 수준으로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공공기관 부채를 감안하면 이미 재정위기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공공기관 부채는 2008∼12년 연평균 14.2%, 지방공기업 부채도 13.1%씩 불어났다.
문제는 재정여건이 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이다. 그 중심에 내년 예산안에 사상 처음 100조원을 넘어선 복지예산이 있다. 저출산ㆍ고령화의 인구구조 특성상 복지예산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경제활동인구는 줄어 세수가 감소하게 되어 있다.
재정 건전성을 치밀하게 관리하는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예산정책처가 제안한 대로 국가채무 등 총량적 재정지표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재정운용 목표를 정하는 재정준칙 마련이 요구된다. 정부는 2008년부터 예산안과 함께 5년 단위 국가재정 운영계획을 발표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법률에 의해 강제되지 않아 정권이 바뀌거나 재정여건 변화에 따라 균형재정 달성 시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8년 당시 2012년으로 잡았던 것이 이듬해 '2014년 이후'로 변경됐고, 박근혜정부 들어선 2017년으로 후퇴했다.
주변 국가와 달리 재정이 탄탄한 독일ㆍ스위스는 헌법에 재정준칙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잉여금을 어떤 순서로 써야 하는지에 관한 수입준칙만 국가재정법에 명시돼 있다. 정부의 행정계획으로 되어 있어 재량권이 많은 지출준칙도 보다 까다롭게 법제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균형재정수지를 한정하고 채무비율 등을 설정해 특별한 경기변동 요인이 없는 한 엄격히 지키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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