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국내 인수합병(M&A)의 역사는 크게 지난 1997년 외환위기(IMF)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IMF 전에는 M&A라는 말이 낯설 정도로 건수가 많지 않았다. IMF를 거치며 수많은 기업이 매각됐고, 국내 경제는 전면 개방의 길을 밟았다.
올 들어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국내 증권사들에게 투자은행(IB) 선진화의 길이 열렸다. M&A는 IB의 핵심 부분인 만큼 그 중요함이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에 글로벌 금융투자 역사에서 규모와 인지도를 고려했을 때 시장에 파급력이 컸던 M&A 사례를 꼽아 봤다.
◆①KKR과 RJR내비스코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된 지난 1988년, 미국에서는 RJR내비스코를 둘러싼 인수 전쟁이 벌어진다. RJR내비스코는 담배와 식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R.J.레이놀즈인더스트리스와 스낵 식품을 제조하는 내비스코브랜즈사가 합병해 지난 1985년 설립된 기업. 당시 기업 규모는 미국에서 19번째로 큰 곳이었다.
최종적으로 승자는 미국 내 사모펀드인 모펀드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 앤 컴퍼니(KKR)로 정해진다. KKR은 250억 달러라는 큰 금액으로 RJR내비스코를 사들였고, 이후 이 기록은 10여년간 깨지지 않는다.
KKR의 인수가 중요한 건, 당시 인수 기법으로 차입매수(LBO0)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KKR의 인수는 역대 최대 규모의 LBO였다. LBO는 일종의 후불제 인수제인데, 인수할 대상 기업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인수하는 식이다. 예컨대 10억 달러를 펀드로 조성한 뒤 금융권에서 90억 달러를 차입, 100억 달러 규모의 기업을 인수한다.
통상 LBO인수는 피인수 기업에게 막대한 금융 부담을 안기기 때문에 인수된 후 극단적인 긴축경영에 들어가곤 한다. 직원을 내치고, 연구개발비를 삭감하고 일부 사업체를 매각하는 식이다. 이렇게 수년간 회사를 운용한 뒤 빚을 다 상환하면 다시 매각해 막대한 차익을 남기는 것이 사모펀드, 특히 KKR의 방식이었다.
당시 RJR내비스코의 M&A는 월가의 내로라하는 IB들이 모두 참여한 소위 별들의 전쟁이었다. RJR내비스코 측에는 시어슨 리먼과 살로먼 브라더스가 포진해 있었는데, 두 회사 모두 1980년대 월가를 지배한 LBO에서 약세였던 곳들이다. RJR내비스코에 대항해 전쟁을 선포한 곳이 당시 LBO의 제왕이던 KKR이었다. KKR 진영에는 드럭셀과 모건 스탠리가 참여하고 있었다.
또 RJR내비스코 인수전에는 이들 두 진영 외에도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 등 당대 최고의 IB들이 총출동했고, 최종 승자는 KKR로 정해졌다. KKR은 당시 워낙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RJR내비스코를 사들인 탓에 큰 수익을 내지 못했고, 1995년 RJR내비스코를 재매각했다.
이승종 기자 hanar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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