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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소설 '28'을 읽은 기자의 눈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9초

소설 '28'의 김윤주는 한진일보 사회부 기자다. 김 기자는 유기동물보호소를 운영하는 서재형 수의사에 대한 익명의 편지를 받는다.


서재형 수의사는 TV 다큐멘터리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인물로 그려지면서 많은 후원금과 협찬과 자원봉사를 약속받은 상황이었다.

편지 발신자는 서재형의 과거 행적에서 몇 가지 의문스러운 점을 들춰보인다. 김 기자는 제보를 바탕으로 '수의사인가 개장수인가'라는 자극적인 제목이 달리는 폭로성 기사를 쓴다. 기사가 나가자마자 서재형에게 답지하던 공감과 후원이 끊긴다. 대신 온갖 비판이 빗발친다.


김윤주 기자는 이번엔 전화 제보를 받는다. 첫 제보를 의심케 하는 얘기였다. 김 기자는 그제서야 첫 제보가 사실인지 따져보는 취재에 들어간다. 서재형은 자신을 찾아온 오보 기자 김윤주를 내쫓는다.

둘 사이의 대립은 그러나 '빨간 눈'이라고 불리게 된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하면서 눈 녹듯 사라진다. 한 성깔 하는 두 남녀의 적대감과 미안함은 슬그머니 호감과 애정으로 좁혀진다.


김윤주는 소설 도입부에서는 사회부 기자 흉내를 제법 낸다. 빨간 눈의 증상과 확산 속도, 감염 경로, 병원체 등에 초점을 맞추고 기사를 작성한다. 서재형의 추측을 듣고 빨간 눈이 개에게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지는 인수공통전염병일 가능성을 보도한다.


제보에 따라 춤추던 김 기자의 관심은 어느 순간 생매장되는 개에게로 옮겨간다. "사람이 떼로 죽어나가는 마당에 누가 개새끼 안부를 알고 싶어 한다고"라며 타박하는 후배의 말에 김 기자는 이렇게 되뇐다. '알고 싶어하는 것만 알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관심 없는 것도 알려야 한다.'


신문사 데스크였다면 십중팔구 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자네가 알고 싶어하는 사실만 기사로 쓰려거든 자네 매체를 차리게."


김윤주 기자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 스티븐 킹에게서 소설 작법을 사숙했다는 정유정 작가의 탓이지. 정유정 작가에게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다시 읽어볼 것을 권한다. 킹은 플롯을 만들려고 애를 쓰다보면 등장 인물이 판지처럼 밋밋해진다고 경고했다.


28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김윤주 기자는 내가 읽은 대로 백지장 같은 기자로 그려져야 한다.




백우진 선임기자 cobalt100@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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