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5일(현지시간) '버냉키, 대담한 실용주의자'라는 특집 기사를 경제면 톱으로 실었다.
8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내년 초에 물러나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공과를 짚어 보는 내용이다.
신문은 샌님인 줄 알았던 버냉키 의장이 3차례에 걸친 과감한 양적완화 정책으로 미국을 2008년 경제위기에서 구했다며 'FRB 역사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대담한 리더'라고 평가했다.
앞서 지난 18일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버냉키 의장과 후임으로 거론되는 재닛 옐런 연준 부의장 및 래리 서머스 전 재무부 장관을 견주어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다. 후보자들 모두 버냉키만큼 FRB 안팎의 다양한 이견을 잘 조율해 내지는 못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버냉키 의장에 대한 미국 언론이나 월스트리트의 평가는 후하다. 미국 경제가 조심스럽지만 확고하게 부활하고 있는 요즘, 그의 공헌이 컸다는 점을 모두 인정해 주는 분위기다. 그는 최근 들어 양적완화 규모 축소를 앞두고 미국의 금융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해 메시지를 관리하는 노련함도 보였다. 오늘 당장 버냉키가 물러난다면 그야말로 '박수 칠 때 떠나는' FRB 의장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난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진원지는 월스트리트나 미국이 아니다. 문제는 신흥국들에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아시아의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을 비롯한, 중남미의 멕시코와 브라질, 그리고 터키 등이 자국통화 가치와 증시의 폭락으로 홍역을 치렀다. 글로벌 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호평을 받았던 나라들이다. 이들의 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미국의 경기부양을 위해 FRB가 풀어놓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값싼 달러 자금이 있었다.
버냉키 의장과 FRB는 이제 출구전략의 시기 선택만 남겨 놓은 것으로 관측된다. 그런데 그 직격탄은 미국보다는 신흥국들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들 신흥국들에 '버냉키 버블(거품)'이 생겨났다는 경고도 연일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우려는 지난 23일부터 이틀간 열렸던 잭슨홀 미팅에서도 터져 나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글로벌 경제를 위해 양적완화 정책은 여전히 필요하다며 "아직 출구로 돌진할 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멕시코 중앙은행 총재도 "선진국이 출구전략을 시행할 때 신흥국을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WSJ도 22일 사설을 통해 출구전략은 신흥국 시장을 감안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신흥국 경제 위기는 버냉키 의장과 그의 최대 업적인 양적완화 정책의 숨겨진 부채이자, 업보이기도 하다. 그만큼 버냉키 의장이 미국의 출구전략뿐 아니라, 글로벌 출구전략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다. 버냉키 의장이 진정 박수받으며 떠나려면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어야 할 것 같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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