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지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또 다시 글로벌 경제 위기가 감돈다. 최근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등 신흥국 위기설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달러 대비 인도 루피 가치는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신흥국들은 제 2 금융 위기로 공포에 휩싸였다.
신흥국 위기에 한국도 대응 태세에 돌입했다. 그러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이런 판국에 정구현 카이스트 교수(사진)의 저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한국경제가 직면한 문제와 해법을 새롭게 제시해 눈길을 끈다. 이에 저자와의 일문일답을 통해 한국경제의 미래를 진단해 본다.
▲ 지난 60여 년 동안의 한국경제 성공 방정식은 무엇이며 향후 15년을 위해 바꿔야할 부분은 무엇인가 ?
- 대한민국의 성공방정식은 지정학적 요인, 산업화 및 개방정책, 민주주의와 가족주의, 실력주의 가치관(학습 및 일 몰입) 등 네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다. 특히 시장경제와 국민의 성취동기가 결합된 것이 주효했으며, 이러한 성취의 바탕에는 실력주의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 2012년 두 차례 선거에서 화두가 됐던 사회복지의 확대와 경제민주화가 제도 수정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변화가 시장경제의 작동을 약화시키고 실력주의 가치관을 훼손한다면 경제는 장기 침체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경제제도를 일부 수정하면서 동시에 시장의 작동을 저해하지 않게 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과제다.
▲ 여러 미래예측보고서 등을 종합하면 2030년 중국이 미국을 누르고 경제 1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변화된 경제 정세속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전략은 ?
- 중국은 2020년께 경제규모에서 미국과 대등해 지고, 2030년께는 기술력과 경쟁력을 포함한 경제력에서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2030께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패권국가가 경쟁하는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부상은 한국 전체에 대해서 새로운 외교 및 전략적 협력체제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정부의 역할 재정립이 시급하다. 정부의 새로운 역할은 ?
- 전통적으로 한국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은 매우 컸다. 그러나 이제는 적어도 경제정책에서는 정부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 기업이나 개인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시장의 역할이다. 특히 창업,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 신산업의 육성, 일자리 창출과 같은 당면한 경제정책에서 정부가 나서서는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고, 오히려 민간 부문을 위축시켜 도덕적인 해이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경제의 고도화, 경쟁력 강화,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이제 정부보다는 시장에 더 의존해야 한다. 정부는 여러 분야에서 규제를 풀고 시장이 더 잘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 현재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
- 앞으로 저성장은 불가피하다. 2001-2012년의 한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인 3.1%는 IMF 위기 전 12년의 평균성장률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저성장의 원인은 생산가능인구의 정체와 감소, 자본의 한계생산성의 체감 때문이다. 경제의 운용과 인센티브를 잘 만들면 앞으로 10년은 여전히 3%대의 성장이 가능하다. 규제를 풀고, 시장을 활성화 하고 기업이 혁신을 하는 여건을 만들어 주면 아직도 질 좋은 경제성장이 가능하다. 반대로 정치권과 사회가 기업을 억누르고 정부가 규제를 강화할 경우 시장은 위축되고 경제는 더욱 침체될 것이다.
▲ 앞으로 창조경제를 바탕으로 서비스산업, 펀산업 등에서 성장잠재력을 찾아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를 위한 환경을 어떻게 조성해야 하는가 ?
- 우리 경제의 당면 과제는 일자리 창출이다. 제조업에서는 일자리를 창출을 하기가 어렵다. 서비스업은 아직도 발전의 여지가 많으며, 특히 일자리 창출 잠재력이 매우 높다. 서비스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 산업에 우수한 인재와 자원이 유입돼야 한다. 현재 이를 막고 있는 것이 규제다. 앞으로 세 가지 서비스 산업이 유망하다. 지식기반의 전문 서비스업, 의료 및 사회 서비스업, 관광과 엔터테인먼트를 포함하는 펀(fun)산업이다. 서비스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규제완화, 즉 '빅뱅'이 필요하다.
▲ 한국 경제는 남북 통합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여전히 북한 체제 변화가 변수다. 어떤 대응이 요구되는가 ?
- 북한의 변화를 예견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북한 체제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 있다. 앞으로 북한의 체제 변화는 불가피한데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북한이 경제개혁을 하고 핵을 포기해서 정상 국가가 되면 가장 좋겠으나 그렇게 되지 않을 개연성이 더 높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닥쳐올 남북한 통합 시대에 대비해서 우리 경제와 사회 내에 여력(slack)을 만들고 여러 가지 제도적 준비를 해 나가야 한다.
▲ 실업, 양극화, 복지 확대, 비정규직 해소 등 당장 해소해야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이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가 ?
- 한국의 소득 분배는 OECD 국가와 비교해도 평균 이상으로 좋은 편이다. 계약직이나 파견근무, 또는 시간제 근무는 필요한 고용형태다. 사회복지 확대는 노인 빈곤의 축소가 급한 편이다. 그러나 정부의 지불능력을 감안해서 서서히 확대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고령화가 되어도 '지속가능한 사회복지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 저자는 경제민주화와 경제 활성화가 양립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두개의 모순 관계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 자연생태계에서 여러 동물들이 먹이사슬을 형성하면서 공존하듯이 시장도 그 안에서 강자와 약자 간에 일정한 질서가 형성돼 움직인다. 이런 기업생태계에 정부가 나서서 거래관계를 바로 잡겠다는 것은 자칫 부작용을 낳게 된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높은 성과를 내는 기업을 규제하고 제재를 가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시장 작동을 방해하게 되고, 그 결과는 경제 전체의 성과의 악화를 가져올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경제민주화 정책들은 시장을 위축시켜서 경제활성화를 저해하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 끝으로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과 핵심 전략은 무엇인가 ?
- 경제가 경쟁력을 가지면서 동시에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려면 두 가지가 작동되어야 한다. 하나는 시장이 높은 성과를 내는 기업과 인력을 제대로 보상해야 하며, 그런 경쟁에서 낙오한 취약계층을 사회안전망이 보호해 줘야 한다. 지금의 글로벌 경제에서 살아남는 방법이기도 하다.한국에서 현재 시장의 작동을 저해하는 요소는 첫째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 둘째는 일부 강성 노조의 지나친 요구, 그리고 민간 이익집단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진입규제) 등이다. 경제민주화나 동반성장, 양극화와 같이 정치적으로 포장된 슬로건을 내세워 시장의 작동을 저해하는 움직임을 중단하고, 시장이 승자를 보상하게 하고 사회안전망이 패자에게 일정한 삶의 질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경제를 운용해야 한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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