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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마을 8景, 눈으로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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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마을 8景, 눈으로 거닐다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 (왼쪽부터) 청송당, 취미대, 백악산, 청하동, 청풍계, 수성동, 인왕산, 세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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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김홍도 등 조선화가가 본 서울풍경
고려대박물관·개인소장품 100여점 출품
서울 인사동서 '한양유흔'展 다음달 15일까지 전시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조선의 수도 한양의 모습은 어땠을까? 사진기가 등장하기 이전 당대 문인화가들과 궁중 도화서 화원이 그린 옛 그림들은 한양이 남긴 흔적들을 추적하게 한다. 조선후기 대표 화가 겸재 정선은 왕족과 권문세가들, 문인들이 거주하고 교우했던 지역 '장동(壯洞)'의 명소들을 담았다. 화원 출신 김홍도는 서민적인 주제의 풍속화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에 못지않게 사대부들의 생활상도 많이 다뤘다.


'한양유흔(漢陽留痕)'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다음달 15일까지 한달여간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다. 우리나라 초대 대학박물관인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품과 개인소장 작품들을 중심으로 100여점이 출품됐다. 조선의 문인화가와 도화서의 화원들이 그린 '서울 풍경'들이다. 그림으로 그려진 당시 서울의 지도와 함께 왕실문화를 엿볼 수 있는 궁중기록화도 등장한다.

이 중 겸재의 '장동팔경(壯洞八景)'은 간송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돼 있는 작품들과 달리 개인소장품으로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장동은 서울 인왕산 남쪽 기슭에서 백악산(북악산) 계곡에 이르는 곳으로, 겸재도 백악산 자락 유란동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만년에는 인왕산 인왕곡에서 눈을 감았다. 따라서 장동은 자연스럽게 겸재의 그림의 주요 소재가 됐다. '이번에 선보이는 장동팔경에서도 겸재는 우리 산천의 실경과 경관에서 받은 감흥을 표현하는 자신의 '진경산수' 화법으로 장동의 명소들을 자세하게 담고 있다. 특히 인왕산과 백악산의 전체적인 풍경이 그려져 있다는 점과 다른 장동팔경 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세심대(洗心臺)'가 실려 있어 더욱 주목된다. '마음을 씻는 곳'이라는 뜻의 세심대는 조선의 임금들이 거동해 봄철 꽃놀이를 즐겼던 곳으로 전해진다.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수 없지만 왕실과 관련한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솔바람 소리를 듣는 집'이란 뜻으로 조선 중기 큰 선비인 청송 성수침의 독서당 이름인 청송당(聽松堂), 인왕산 동쪽기슭의 북쪽 골짜기 일대로 병자호란 때 강화도를 지키다 순국한 우의정 김상용의 별장이 있었던 '청풍계(淸風溪)'도 볼 수 있다. 그림 전경의 버드나무에서 시작해 전나무, 소나무로 이어지는 힘찬 기세, 후면의 절벽의 육중한 모습이 화면 전체의 에너지를 진동케 한다. 인왕산을 뒷 배경으로 왼편에 계곡물줄기가 뿜어져 내려오는 '수성동'의 모습에선 그 이름처럼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며 인왕산 백련봉이 강한 묵찰법(붓을 뉘어 쓸어내리듯 그리는 방식)으로 표현돼 있다.


박은순 덕성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는 "이번에 공개된 '장동팔경도'는 그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다른 작품들에 포함된 장소이외에 인왕산과 백악산을 별도로 포함시킨 점이 새롭다"면서 "필치는 둔탁하고 다소 거칠며 먹색도 투박해 현재까지 알려진 장동팔경 관련 작품 중 가장 늦은 시기의 작품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겸재마을 8景, 눈으로 거닐다 단원 김홍도, 남소영, 종이에 수묵담채, 32.3×43.7cm


단원 김홍도의 '남소영(南小營)'이란 작품은 어영청(조선후기 중앙에 설치된 오군영(五軍營) 중 왕을 호위하던 군영)의 분영 남소영에서의 연회모습을 담았다. 건물 위치는 현재 장충동과 한남동을 잇는 고개의 마루턱 남소문(南小門) 근처로 전해진다. 울창한 숲을 등지고 아늑하게 들어앉은 건물과 반듯한 담으로 둘러싸인 넓은 뜰을 부감법(俯瞰法, 정면이 아닌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듯 그린 화법)으로 그려냈다. 이를 통해 건물 안의 여흥 장면, 건물 양옆과 뒷마당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생생히 전해진다. 인물들의 의상은 흰색과 옥색의 배합으로 주위의 색조와 비슷해 차분하고 담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겸재마을 8景, 눈으로 거닐다 왕세자두후평복진하도병, 비단에 수묵채색, 125×376cm


'왕세자두후평복진하도병'이란 궁중 그림도 눈에 띈다. 19세기 궁중행사도는 10폭의 대형 '진하도병(陳賀圖屛)'이 많이 제작됐는데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이 그림은 1897년 12월 왕세자 순종이 천연두에 걸려 회복된 역사적 사실과 관련돼 있다. 당시 순종의 천연두 판명으로 의약청이 설치되고 내의원 도제조와 제조가 당직을 서면서 치료에 애쓴 결과 증세도 빨리 호전됐다. 고종은 관례대로 도제조 이하 의약청의 관원 등에게 골고루 시상했고, 축하연회를 열면서 이 같은 기념 병풍을 도화서 화원들에게 만들게 했다. 그림에는 같은 형태의 인물이 빽빽하게 밀집돼 있으며, 채색의 빛깔이 퇴색하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 있어 화려한 느낌이 감돈다. 이밖에 화조도를 즐겨 그렸던 심사정, 사슴과 원앙 등 동물을 호방하게 그려낸 장승업의 작품들, 큰 업적을 이뤄낸 문신과 무신의 초상화들도 전시되고 있다. 공아트스페이스. 문의 02-730-1144.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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