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혜민 기자] 수급사업자와 거래하는 원사업자 10곳 중 3곳 이상이 하도급법을 위반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방적으로 혹은 경기여건을 구실로 단가인하를 강요하는 기업도 15%에 달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2011년 하반기 하도급거래 실태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번조사는 제조·용역 및 건설업종 6만개 사업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원사업자는 업종별 매출액 상위 기준 총 2000개 사업자를 선정했고 수급사업자는 이들과 거래하는 5만8000개 사업장을 선정했다.
하도급거래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원사업자의 하도급법 위반혐의 여부 ▲하도급대금 지급수단 및 결제기일 실태 ▲수급사업자 선정?운용 및 협력관계 실태 ▲하도급 공정거래 인프라(표준계약서 사용 등) 조성 실태 등을 조사했다. 조사방식은 서면실태조사와 공정위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조사결과를 보면 2000개 원사업자 중 수급사업자와 거래를 하는 곳은 1405곳으로 이들 중 455곳(32.4%)이 1개 이상의 하도급법 금지·의무조항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고 답변했다.
10곳 중 5~6곳이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업종별로는 건설업종에서 사용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사용하지 않는 곳은 ▲업종의 표준계약서가 존재하지 않거나(32.7%) ▲현실과 맞지 않거나(26.3%)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22.7%) 것을 이유로 들었다.
하도급거래 결제는 주로 현금을 포함한 현금성결제(92.5%)로 이뤄졌다. 현금성결제란 현금결제를 비롯해 기업구매전용카드,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기업구매자금대출 등을 말한다. 어음결제비율은 5.6%였다.
60일을 초과하는 장기어음을 지급하는 곳도 있었다. 원사업자의 17%, 수급사업자의 15.3%는 장기어음을 지급하거나 지급받고 있다고 답변했다.
원사업자 10곳 중 2곳은 지난 2011년 하반기 단가인하를 실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조업은 그 비율이 늘었다. 단가인하를 실시한 곳 중 90% 이상이 5%이내의 단가인하를 실시했다. 그러나 20%이상 단가를 인하한 곳도 0.2%에 달했다. 원사업자는 단가인하 요인으로 생산성 향상·원가 절감(34.5%)과 구매물량 증가(21.4%)를, 수급사업자는 제품가격 인하경쟁(42.6%)을 많이 지적했다.
조사대상 중 85%는 상호합의하에 단가인하를 결정했지만 일방적으로 인하하거나(5.7%), 일정금액 할당 후 인하(5%)하는 등 강제적인 곳도 적지 않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상호합의하에 단가인하를 결정한다고 답변한 곳 역시 경기 악화에 따른 불공정행위 증가 가능성을 고려할 때 합의에 진정성을 포함한다고 보기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원재료값 인상으로 인해 수급사업자 48.5%는 원사업자에게 하도급대금 인상을 요청했지만 18%는 원사업자로부터 무시되거나 거래단절이 우려돼 인상요청을 포기했다고 답변했다. 수급사업자에게 기술자료를 요구한 원사업자도 3.7%나 있었다.
공정위 정진욱 기업거래정책과장은 "하도급대금 지급, 단가인하, 납품단가 조정 등 원수급사업자 간 동반성장 추진실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도 "다만 서면계약 문화가 정착된 것이 아니고 표준하도급계약서 사용비율이 절반에 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당특약이 관행적으로 사용되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앞으로 구두발주, 부당 단가인하, 부당 발주취소 등 불공정 거래관행에 엄정 대응하고 하도급 공정거래 인프라 조성에 더욱 노력하겠다"며 "불공정 하도급거래의 출발점이 되는 구두발주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상습적인 서면 미발급 혐의 사업자를 선별해 올 하반기에 직권조사를 실시하고 과징금, 형사고발 등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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