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2007년 12월 28일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재계 총수들과의 첫 만남은 화기애애 그 자체였다. 이명박 당선자가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가 되도록 할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재계 역시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에 동참할 것을 약속했다.
'경제 대통령'에 쏠리고 있는 높은 기대에 부응해 이명박 당선자가 최대, 최고 수준의 약속을 한 셈이었다. 이날 회동에 참석한 재계 한 관계자는 '10년 묵은 체증이 풀렸다'라고 말할 정도로 과거와는 다른 정부ㆍ기업간의 우호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로부터 5년 뒤. 재계는 다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이명박 정권 시절의 짧은 허니문을 마치고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10년간 겪었던 시절로 회귀했다는 얘기마저 들렸다.
지난 정권말부터 돌았던 사정리스트가 현실화되면서 재계 서열 10위권의 기업들이 하나 둘씩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SK, 한화에 이어 박근혜정부 시작과 함께 CJ그룹이 오너비리로 수사를 받았다. 모두 오너의 구속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에는 재계 서열 순위 5위인 롯데가 국세청의 강도높은 조사를 받고 있다. 정기세무조사냐 특별조사냐를 놓고는 아직도 설이 분분하다. 하지만 일반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서울청 조사1국이 아닌 조사4국 소속 150여 명의 조사관들이 대거 투입된 것을 놓고 롯데에게 '올 것이 왔다'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롯데의 경우 'MB정권 때 가장 혜택을 입은 그룹'으로 정권이 바뀌면 사정 1순위라는 해괴한 소문이 돌았던 터였다.
문제는 이같은 대기업 수사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다. 항간에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재벌군기잡기와 경제민주화 기조, 곳간 채우기를 위한 편파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세수 확보와 맞닿아 있다는 시각이 가장 우세하다. 롯데 역시 국세청은 실질적
지주사인 롯데쇼핑과 계열사 간 탈세와 롯데마트가 하청업체와 거래하면서 발생한 탈세를 집중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이 중소형 커피전문점을 비롯해 중소기업들까지 과도한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실제 지난 5월 말 기준 정부의 세금 징수 실적은 82조1262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9조원이나 줄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국세징수는 목표액인 210조원보다 25조~27조원 상당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을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 증대가 불가피한 이유다.
탈세나 탈루 기업에 대해서는 국세청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여 빼돌린 세금을 징수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세무조사를 세수 확보 차원에서 시도 때도 없이 벌이는 것은 제대로 된 정책이 아니다. 세무조사는 해당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대외 이미지를 실추시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대기업 대상 세무조사를 10% 줄이기로 한 것은 다행이지만 기업들의 걱정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과도한 경제민주화 기류와 함께 강도높은 세무조사는 기업의 투자 의지를 꺾기 마련이다. 내수시장을 활성화시켜 기업의 투자의욕을 고취시키고 일자리를 늘리면 세수는 증대될 것이다. 보다 현실적인 조화가 아쉬운 시점이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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