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창문 너머로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남경희가 온 것은 아까 초저녁 무렵이었다. 한번 시작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나왔다. 하림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장편소설의 길고긴 줄거리 속으로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그녀로서도 누구에겐가 이런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는지 몰랐다. 누구의 삶인들 그리 만만한 삶이 있겠는가. 그녀는 하림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아버진 교회 방화범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정신병원에 다녔던 전력이 있는데다 나이도 많고, 그나마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아 곧 풀려 나왔어요. 하지만 아버지에게 더욱 치명적이었던 것은 장로직에서 쫒겨난 것이었죠. 그건 파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죠. 어디에도 받아주지 않았고, 갈 데도 없었죠. 그에 따라 아버지의 병은 점점 깊어져갔어요. 카인을 따라 다니던 이마의 표시처럼 베트남 전에서 저질렀던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악이 항상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했죠. 그 어디에도 아버지가 기대고 위로받을 곳은 없었죠.”
“그래서 이곳으로 와서 기도원을 지어드리려 했던 거군요.”
그녀의 이야기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하림이 말했다.
“예.”
그녀는 머리를 끄덕였다.
“사실 그건 나의 소망이기도 했어요.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나는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고 얼마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했어요.”
“기도원이라니까 왠지 비밀스럽고, 음침한 느낌이 드는군요. 병자들 고쳐준다고 모아 놓은 그런 곳 말이예요. 동네 사람들이 별로 좋아할 것 같진 않네요.”
하림이 솔직하게 말했다.
“알아요. 제가 짓고 싶은 것도 그런 게 아니라 작은 수도원 같은 곳이죠. 누구나 와서 쉴 수 있고, 노동도 하고, 기도도 드리고 하는 곳 말이예요. 태백에 가면 예수원이라고 돌아가신 캐나다 출신 신부님이 세우신 수도원이 있어요. 거기 가면 노동이 곧 기도요, 기도가 곧 노동이란 팻말이 붙어있는데 참 인상적이었어요. 무슨 종교를 가졌든 누구나 상관없이 그곳에 와서 일하고, 기도하고, 쉬고 가곤 했지요. 우리 아버진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저 역시 혼자죠. 그런 기도원이 있다면 마을 사람들과도 어울려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하림의 눈치를 살폈다.
하림은 약간 복잡해진 머리로 그녀를 눈길을 피해 시선을 딴 곳에 두었다.
“기도원의 이름도 정해 두었어요. ‘인자의 머리 둘 곳’ 이라고요.”
그녀가 말했다.
“인자의 머리 둘 곳....?”
“예.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도 있고, 공중의 나는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거든요. 이렇게 세상에 교회가 넘치고 도처에 십자가가 높게 걸려있지만 정작 예수님이 거할 곳은 없다는 말씀이죠. 신학대학 시절 이 구절을 읽으며 새벽에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분의 외로움과 아픔이 가슴에 파고들었어요. 사실 난 우리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기도원을 지어 수녀처럼 혼자 살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런데다 다행히 얼마간의 물려받을 재산이 있구요. 아버지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이곳에 마지막 그런 피난처를 지어보고 싶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런 시설이 만들어지면 마을 사람들도 모두 좋아하고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었죠.”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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