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경제가 부진을 벗어나지 못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s)'이다. 애니멀 스피릿은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가만히 있기보다는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충동'을 가리키는 데 썼다. 케인스는 저서 '일반이론'에서 "개별적인 기업의 신규 사업이 충분히 수행되려면 합리적인 계산이 애니멀 스피릿으로 보완되고 뒷받침돼야만 한다"고 설파했다.
애니멀 스피릿은 국내에서는 '야성적 충동' '동물적 직감' 등으로 옮겨졌다.
이런 표현에 의문을 갖게 된 건 소설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였다. 다섯째 딸 리디아는 혈색이 좋고 표정이 명랑하며 생기가 넘치는 아가씨로 묘사됐다. '생기가 넘쳤다'의 원문은 'She had high animal spirits'다.
오만과 편견은 케인스가 태어나기 전에 출간됐다. 애니멀 스피릿은 케인스가 경제 분야에 가져왔지만, 그가 만든 말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찾아보니 애니멀 스피릿은 유래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에는 애니멀 스피릿이 뇌에서 생성되고 신경을 통해 근육에 전달돼 근육을 움직이도록 한다고 여겼다. 이 개념은 의학이 발달하면서 밀려났다. 애니멀 스피릿은 이후에는 '활기' '혈기'라는 뜻으로 활용됐다. 영한사전에도 이런 뜻으로 나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서 낸 '에센셜 이코노믹스' 경제용어 사전은 간단히 '자신감'이라고 설명한다.
애니멀 스피릿 번역 가운데 '야성적' '동물적' 부분은 원래 뜻과는 거리가 먼 게 아닐까? '애니멀 스피릿(활기)'이라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참고로 일본에서는 '애니멀 스피릿(혈기)'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여기서 글을 마치면 케인스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그 손가락만 보면서 꼬치꼬치 따지는 꼴이 된다.
케인스가 가리킨 달은 무엇이었나? 그는 애니멀 스피릿으로 투자 불안정성을 설명했다. 그는 또 "기업은 전반적으로 사회를 이롭게 하고 경제적인 번영은 정치사회적인 분위기가 평균적인 기업가에게 우호적인지 여부에 크게 좌우된다"며 다음과 같은 요지로 당부했다. 기업활동이 저조해져 경제가 활력을 잃는 일이 빚어지지 않게 하려면 정부나 정책이 애니멀 스피릿을 떨어뜨리면 안된다.
백우진 선임기자 cobalt100@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