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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박근혜정부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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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박근혜정부의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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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이르시되 경제에 창조가 있으라 하시니 온갖 창조 관련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박 대통령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박근혜정부 창경기 1장 1절)


'박 대통령이 시간제 근로를 좋은 일자리로 만들라 하시고 삼성 등 대기업들이 시간제 정규직 도입에 앞장서니 이는 집권 100여일 만이니라.'(박근혜정부 창경기 1장 2절)

성경 창세기를 보면 창조주가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겼고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니 그대로 됐다. 기독교인이 아니면 무슨 허무맹랑한 이야기냐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5년마다 경제의 새판을 짜는 '창경기(創經記)'가 쓰여지고 있다.


아무리 대통령중심제 국가라지만 수십 년 동안 눈곱만큼도 변하지 않은 대통령 '입바라기' 행태가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언급하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창조경제특별위원회를 만들었고 정부 각 부처에서는 창조가 붙지 않는 보고서를 보기 힘들다고 한다. 오죽하면 오롯이 숫자만 다뤄야 할 공인회계사협회 행사에 초빙된 모 정치인이 '창조회계'를 화두로 올리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시간제 근로도 좋은 일자리'라는 박 대통령의 언급이 나오자 삼성은 3000명 규모의 시간제 정규직 도입을 추진키로 했다. 재계 맏형 격인 삼성이 총대를 메니 다른 기업들로 확산되는 것은 말 그대로 시간문제였다. CJ그룹이 아르바이트생 1만5000여명의 계약기간을 없애고 정규직 대우를 해 주겠다는 등 통 큰 발표가 줄을 잇고 있다.


이런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에서 어떻게 창조적인 경제가 생성될까 의심스럽지만 그렇다고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김영삼정부는 '신경제'를, 김대중정부는 '민주적 시장경제'의 기치를 내세웠다. 이어 노무현정부는 창조와 정확히 구분이 가지 않는 '혁신경제'를 내밀었고, 이명박정부에서는 지금 언급조차 되지 않는 '녹색경제'가 화두였다. 대통령이 내세운 경제철학은 언제나 그렇듯 5년 시한부였다.


녹색성장은 세계적인 흐름일 뿐 아니라 중장기적인 국가과제라고 못을 박았지만 지금 녹색을 세 치 혀에 올리는 경제인들은 사라졌다. 2008년 1월 참여정부가 청와대에서 이삿짐을 싸고 있을 당시 재정경제부는 혁신주도형 경제시스템을 정착시켰다고 자평했다. 정말 혁신주도형 경제체제가 정착되고 녹색성장 토대가 마련돼서 이제 창조경제로 나가는 것인지 자문해 봐야 답은 '아니올시다'일 게다.


창조경제의 대명사 격인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설립한 해는 1976년이었다. 1977~81년 미국 대통령은 39대 지미 카터였다. 그는 에너지 개발정책을 밀어붙였다 의회에서 거부당했고 국내 경제정책의 파탄 책임 때문에 재선에도 실패했다. 대통령이 창조경제하자고 창조적 기업이나 인물이 나오는 게 아니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미국 실리콘밸리도 6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 정부가 혁신 활동에 자금을 댄 다음에는 일일이 간섭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실리콘밸리가 만들어졌다. 이 외에도 냉전시대에 제공된 막대한 자금과 안정적인 경제성장, 정보기술(IT) 인력들의 대규모 이민 등 간접적인 요인도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헬라어 '아브라카다브라(말한 대로 될 지어다)'처럼 한국 경제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혁신도 했다가 녹색성장도 해 보고 창조경제도 달성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러나 약 4년 6개월 후 창조경제는 성과 보고서를 신문 한쪽에 장식한 후 또다시 어디론가 사라질 공산이 크다.


한국은 세계 12대 경제대국이다. 이 정도 됐으면 70년대 개발시대에나 걸맞은 '구호경제'는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창조경제를 5년 내 다 이룰 수 있다는 무모한 자신감에 도취돼 있다거나 차기, 차차기 정부도 창조경제를 밀어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이 아니라면.






박성호 아시아경제팍스TV 방송본부장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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