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中 습격에 또 '샌드위치 한국'
고부가 선박은 세계 1위
전체 수주는 中에 뺏겨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지난 4일 찾은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초대형 LNG 운반선을 둘러보던 서정덕 조선계약운영부장은 "가격이 높은 고가선박과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고부가가치선박을 잘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선주가 주문한 LNG선의 막바지 작업을 현장에서 지휘하고 있는 그가 지적하는 부분은 단순히 비싼 선박이나 해양설비가 무조건 득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현재 건조중인 대형 FPSO나 LNG선의 경우 관련 설비나 내부저장시설을 외부에서 공수해야 하는 만큼 기존의 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과 같이 대부분을 자체적으로 만드는 선박에 비해서는 수익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계 1위 조선소로 꼽히는 이곳에선 이제 일반 상선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높은 기술수준이 요구되는 LNG선이나 드릴십, 대형 해양설비 등이 자리를 채웠다. 불황이 몇년째 이어지고 있는 만큼 전 분야에서 올해 수주목표를 보수적으로 잡았지만 해양분야만큼은 지난해 3배 수준인 60억달러로 정했다. 이 같은 흐름은 현대를 비롯해 삼성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대형 조선업체도 비슷하다. 이는 최근 몇년간 중국이 조선업을 집중적으로 육성, 상대적으로 기술수준이 낮은 일반상선 분야를 휩쓸어간 때문이기도 하다.
한ㆍ중ㆍ일 조선업 외형에 대해 거칠게 순위를 매긴다면, 과거 1950년대 이후 일본-한국-중국이던 순서는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한국-일본-중국으로 바뀌었다. 이후 업황호조로 전 세계적으로 주문량이 급증하면서 중국은 2008년을 전후로 일본과 한국을 앞질렀다.
일본은 시대흐름에 부합하지 못해 경쟁력을 잃었고, 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앞세워 점유율을 높였다. 지난 10여년간 동아시아 지역의 조선업 지형도 변화는 과거 수십여년간 변화에 비해 훨씬 빠르게 진행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 같은 흐름을 다시 한번 바꿔 놓았다. 유례없는 호황과 마찬가지로 불황이 동아시아 조선업구도 재편을 부채질하는 모양새다. 글로벌 조선경기가 절정에 달했던 2008년 전 세계 수주량은 5153척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1189척 수준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조선업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양적완화를 통해 조선업계에 대한 측면지원에 나서면서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중점 업종기업 구조조정 계획 가운데 선박업을 포함시켰다. 계획의 골자는 오는 2015년까지 10대기업이 중국 내 전체 선박건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합병이나 퇴출을 통해 난립한 조선소를 정리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의 덩치를 키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는 모양새다.
일본 내 주요 조선업체 역시 합병을 통해 시너지 창출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 1월 종합중공업그룹 JFE홀딩스와 IHI는 각각의 조선 자회사인 유니버셜조선과 IHI마린유나이티드를 통합해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를 설립한데 이어 가와사키중공업과 미쯔이조선도 합병을 검토중이다.
일본 내 상위업체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중복비용을 절감하고 고가선박 영업활동을 강화하는 등 비슷한 목표 아래 추진되고 있다. 엔저 수혜는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일본조선공업회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 3ㆍ4월 연속해서 수주량이 늘었다. 특히 4월의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4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은 대형 조선업체 위주로 해양설비나 액화천연가스(LNG) 관련 선박 수주를 이어오면서 그나마 '선방'하고 있다. 이들 설비나 선박은 높은 수준의 기술이 요구되는 까닭에 가격도 만만치 않다. 대형 LNG선의 경우 척당 2억달러 안팎으로 초대형 유조선이나 대형 컨테이너선의 두배, 대형 업체들만 만들 수 있는 LNG FPSO는 수십억달러에 달한다.
문제는 중소 조선소가 휘청이면서 산업의 '허리'가 부실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국내 중소형 조선소가 전체 수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19%에서 지난해 5%로 급감했다. 유조선이나 컨테이너선과 같이 높은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선박의 경우 중국 조선소에 일감을 대부분 뺏긴 탓이다.
현대중공업 조선연구소의 김화수 연구위원은 "지금은 국내 대형 조선소가 수주하는 고가 설비나 선박도 언젠가는 중국이 따라잡을 것"이라며 "직접 제조하지 않아도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독자적인 기술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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