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아시아블로그]대통령과의 비현실적인 점심

시계아이콘01분 26초 소요

[아시아블로그]대통령과의 비현실적인 점심
AD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출입기자 오찬간담회가 열린 지난달 31일은 며칠 비오다 모처럼 맑았다. 얼굴에 선크림 바르는 기자들이 꽤 많았다. 대통령과의 약속 장소인 '녹지원(綠地園, 경복궁의 뒷 정원이며 과거시험을 보는 장소로도 쓰였음)'은 한정식집이 아니고 청와대 잔디밭이다. 햇살도 따가운데 본관 식당에서 하면 될 것을 굳이 왜 녹지원으로 정했을까 싶었지만 박 대통령은 하얗고 두꺼운 화장을 하고 12시 정각에 나타났다.


간담회는 기념사진 촬영으로 분위기 좋게 시작해 알맹이 없이 끝났다. "박 대통령은 100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는 것이 이날 우리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의 전부다. 굳이 하나 더하자면 '돼지를 한 번에 구으려면 코에다 플러그를 꽂으면 된다'는 것도 박 대통령 덕분에 처음 알았다. 얼굴이 탈까 두려웠던 기자들과 민낯을 보이기 싫었던 대통령은 그렇게 평화로운 100일을 타협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1970년대 어느 날을 기억했다. 밤에 초콜릿을 입힌 과자가 새로 개발됐는데, 당시로선 참으로 귀한 간식거리였을 법 싶다. 과자를 든 20대 박근혜는 출입기자들과 바로 이곳 녹지원에서 만났다. "우리 완전히 피크닉 온 것 같지 않아요?"라고 물었더니 한 기자가 "아니다. 우리의 피크닉은 (술을)먹고 쓰러져야 피크닉"이라 답했다고 한다. "여러분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사고쳐요"라는 뼈있는 농담인가 싶어 쫑긋했지만 그냥 그게 다였다.


순간 멍해진 머리 속엔 1970년대 흑백 TV에서 봤던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하얀 앞치마에 머리쓰개를 한 알프스의 하이디가 바구니를 들고 들판을 노니는 모습, 40대 이상이면 다 아는 그 환상적인 장면 있지 않나. 그것의 청와대 판이라고나 할까.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는 고급스런 잔디밭에서 초콜릿(그것도 그 안에 밤이 들어있다는!)을 먹는 그들만의 '피크닉'이, 그나마 서울에 살아 남산타워 아래까지 갈 수 있었던 기자의 1970년대 '삶은 달걀 소풍'과 비슷한 시절의 일이란 게 마냥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40년이 지난 2013년 녹지원 풍경도 현실적이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기자와 대통령의 만남에 질문과 답이 오가지 못한 것처럼 비현실적인 게 또 어디 있으랴. 국민들은 하루 수백건씩 청와대 홈페이지에 질문을 올리는데 그들을 대신한다는 기자들은 피크닉의 환상에 빠져 버린 것일까. 기자회견이 아닌 비공개 간담회란 형식을 택한 것은 '취재보다 그냥 인사나 하자'는 뜻이다. 이런 결정에서 기자들은 '을(乙)'이기 때문에 책임을 묻자면 좀 억울한 면도 있다.


"박 대통령은 보여주기성 이벤트를 싫어한다"는 기사를 기자도 여러 번 썼다. 행사는 안 하더라고 보여줄 건 보여주라고 지적하지 못한 건 잘못이다. 윤창중 사건에 사과하라는 것은 사과로 끝내자는 게 아니라 사과부터 하고 시작하자는 뜻이었다고 더 강하게 말했어야 했다. 조용한 100일이 '겉치레보다 실속'이란 의미보다는 비판의 기회를 아예 차단하려는 것이란 의심은 기자만 품는 게 아니다. 어떻게 지났는지 알 수 없는 100일이 대통령과의 비현실적인 기념사진 한 장으로 남았다.






신범수 기자 answe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