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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희한한 '갑을' 관계, 환자 vs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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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바뀌었지만 의료 사고 나면 여전히 환자 피해 보상 받기 어려워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요즘 갑을 관계가 많이 얘기가 나오는데, 이렇게 희한한 갑을 관계가 또 있나?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지만, 의료사고가 나는 순간 환자는 철저한 을이 되고 의료진은 갑이 되어 버린다."


최근 '갑을 관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의료 사고 피해자와 의료진과의 '희한한 갑을 관계'에 대한 불만이 높다. 보통 항공기 승무원, 백화점 매장 직원 등 서비스업종에서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가 철저히 '갑'이 되고 종사자들은 '을'이 되면서 막말ㆍ폭언 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 반면, 같은 서비스업종임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여전히 고객인 환자가 갑이 아닌 을의 위치에 있다. 특히 의료사고가 날 경우 환자의 피해 구제는 매우 어렵다. 병원과 의사에게 크게 유리하게 돼 있던 의료분쟁 해결 시스템을 작년에 '개선'해 시행한 지 1년을 넘기고 있지만 환자들이 불리한 처지에 몰리는 현실은 별반 나아지지 않고 있다.

A씨는 지난 2011년 어머니가 "머리가 아프다"고 해 유명 대학병원에 입원시켜드린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다. 검사를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는 다음날 침대에서 뇌줄중으로 쓰러진 상태로 발견 됐다. 수술을 했지만, 결국 식물인간 상태로 현재까지 생명유지장치에 의지하고 있다.


A씨는 병원 측의 검사 미흡과 방치, 뒤늦은 수술 등으로 어머니의 상태가 악화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심했지만 병원 측은 "우리 잘못은 없다. 법으로 해결하려면 해라"며 법무팀 직원 외에는 만나주지도 않았다. A씨는 "왜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던 우리가 갑자기 병원 측에게 사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지 모르겠다"며 "소송이나 조정을 신청하려고 해도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얘기를 들어 사실상 포기한 상태"라고 호소했다.

B씨는 올해 초 백내장이 있다는 진찰 결과를 받고 자택 인근 한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끝난 후 상처가 다 아물었지만 시력 저하ㆍ어지러움증 등 후유증이 발생했다. 병원에 가서 따졌더니 "우리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알아서 해라"는 답변만 돌아 왔다.


처음엔 병원 측이 수술 중 실수를 아예 인정하지 않았다가 언론 보도ㆍ고발 등의 조치를 언급하자 나중에서야 약간의 손해배상금을 주면서 무마를 시도했다. B씨는 "의사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얘기를 하려니 갑자기 '을'이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며 "왜 의료진의 실수를 환자가 알아내야 하는 지 답답한 마음만 들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의료사고의 피해자들이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의료사고 피해구제와 관련한 제도적 미비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2011년까지 의료법상 구성된 의료심사조정위원회를 통해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 분쟁 조정을 담당했었다. 법원ㆍ소비자원 등을 통해서도 피해 배상 등의 절차가 진행돼 왔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의료 사고의 과실 여부를 피해자가 사실상 입증해야 하는 제도적 헛점이 지적돼 왔다. 이로 인해 조정위의 경우 오히려 환자들이 기피하는 대상이 됐고, 법원 소송도 환자의 승소율이 2007년까지만 해도 10%대에 머무르는 등 보완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지난 2011년 국회에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작년 4월 독립적인 중재기관인 '한국의료사고분쟁조정중재원'이 출범했다. 의료사고 피해자 측이 조정을 신청하면 중재원이 과실 여부를 판단해 병원 측과 조정ㆍ중재를 하는 시스템이다. 피해자 측이 과실 여부를 입증해야 했던 종전 시스템보다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강제 조정이 아니라 임의 조정이어서 70% 이상의 의료기관들이 조정에 응하지 않고 있다. 또 의료사고의 '물증'인 검사 결과와 각종 신체지표 등 데이터의 보관 및 공개가 의무화돼 있지 않는 등 의료사고 피해자가 의료진의 과실 책임을 입증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실제 지난 1년간 중재원이 조정에 성공한 건수는 4월 현재 133건에 불과하며 그나마 100건가량은 500만원 이하의 소액 사건이다. 의료소비자단체에서는 '무용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게다가 의사협회 등 의료단체들은 조정에 응할 경우 의료진의 과실이 없더라도 피해보상금액의 30%를 부담해야 하는 조항 등을 문제삼아 아예 중재원의 조정에 대해 집단적으로 보이코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은 "의료사고가 날 경우 과실이 아니라는 점을 의료진이 입증하도록 법률ㆍ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잘못된 법제도로 인해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봉수 기자 bskim@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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