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사업부 투자 주도, 경쟁사 아닌 협력사 입장서 투자 결정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 구도를 벌이던 삼성전자가 팬택에 530억원이라는 거금을 선뜻 내 놓았다. 팬택 전체 지분의 약 10%에 달한다. 경영권도 참여하지도 않기로 했다. 왜 삼성전자는 경쟁사인 팬택에 투자하고 나선 것일까?
22일 팬택은 530억원 규모의 3자 배정 유상증자에 삼성전자가 참여한다고 밝혔다. 팬택은 지난 1월 퀄컴으로부터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바 있다. 이후 대규모 순손실을 입으며 지난 3월 결손 보전을 위해 감자까지 실시한 상황이었다.
삼성전자는 이번 투자를 통해 팬택의 지분 10.03%를 보유하게 된다. 퀄컴(11.96%), 산업은행(11.81%)에 이어 3대 주주가 되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이번 투자 결정은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직접 나서면서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박 부회장은 지난 3월 단행된 팬택 주식의 감자 이후 신규 투자처 물색에 여념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모바일D램, 플래시메모리 등을 공급받고 있는 삼성전자를 떠올린 뒤 자금 유치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측에서는 3명의 복수 대표 중 반도체 사업부문을 맡고 있는 권오현 부회장의 주도로 투자 결정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 사업을 맡고 있는 신종균 사장 입장서 팬택은 경쟁사지만 권오현 부회장 입장서는 고객사다.
팬택은 매년 2000억원 상당의 부품들을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등의 삼성그룹 전자계열사로부터 구매하고 있다.
권 부회장측은 팬택측의 유상증자 참여 요청에 당초 난색을 표명했지만 팬택의 기술적 가치, 팬택과 연계된 국내 협력사 등을 고려해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종균 IT모바일(IM) 담당 사장, 윤부근 소비자가전(CE) 담당 사장을 설득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 창업주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의 경영 이념인 '사업보국(事業報國)' 차원에서 투자 결정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 중 우수한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사업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많은데 팬택도 그 중 하나"라며 "기업은 인류와 국가에 도움을 주는 사업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선대 회장의 '사업보국' 철학도 이번 투자 결정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경영에는 일체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다. 팬택 입장서는 퀄컴에 이어 경영권에 관심이 없는 대규모 투자처를 또 다시 발굴해 장기 경쟁력 강화에 힘쓸 수가 있게 됐다.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는 팬택을 삼성이 정보통신기술 진흥을 위한 상생과 공존을 위한 틀로 본 것"이라며 "이번 투자는 엔저 등 경제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책임있는 노력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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