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기업들의 아랫목 경기,웃목인 내수 중심 제조업체까지 퍼지지 못해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 지연진 기자]초저금리로 대출이 쉬운데다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에 따른 엔화 약세로 현금이 쌓인 일본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늘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수출 기업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수 중심 제조업체들은 여전히 금융시장 활황과는 담을 쌓고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도쿄의 제조업 부품 기업들이 밀집한 오타 지역은 여전히 썰렁하다.?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일본 기업들의 실적 발표 결과 기업들이 투자를 다시 시작했다는 신호가 나왔다고 보도했다.반도체 제조사인 도시바는 4월1일부터인 2014 회계연도에 칩 투자 규모를 거의 두 배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고 혼다와 마쓰다,도요타 등 자동차 3사도 올해 설비투자를 각각 18%와 68%, 6.7%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운송업체인 야마토 홀딩스도 설비투자를 70% 늘리기로 했다. 당일 배송 서비스를 가속하고 새로운 물류기지를 신설하기 위한 것이다.?이와무라 데쓰오 혼다 부사장은 지난달 한 컨퍼런스에서 “올해 새 공장을 짓는데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혼다 자동차는 2주 전 멕시코의 변속기 공장 신설에 4억7000만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수출기업에 납품하는 일부 부품 기업들은 투자증대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 미츠비시전기의 경우 공장가동에 필요한 부분품 매출이 3월에 두자리 숫자로 증가해 연간 공장자동화 분야 매출이 10%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초저금리와 2007년 이후 최고치에 이른 주가를 감안할 때 업들이 보유현금을 대량으로 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이이치뮤추얼생명보험은 “일본 기업들의 지출은 올해 2.5% 증가한데 이어 내년에는 4.5%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들의 지출은 부침을 거듭하는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연결고리'가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가 아닐 수 없다.
경제성장의 견인차인 기업 설비투자는 1990년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했지만 1992년 '자산거품'이 터진이후 급격히 줄었고 최근년에는 실종하다시피 했다. 지난 해 3월 말로 끝난 2012년 회계연도에 기업투자는 GDP의 13%에 그쳤다.
이 때문에 오타 지역에 밀집한 중소 제조업체들은 설비를 거의 갈아치우지 않았다.수요가 없으니 굳이 새로운 장비를 들여놓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4일 오타지역 르포기사에서 썰렁한 분위기를 전했다. 일본 대기업체에 납품하는 오타지구 입주업체 기업들은 대기업의 해외이전과 폐업으로 1989년 이후 절반이상이 문을 닫았다. 블룸버그보도에 따르면, 전화기와 스테레오,키보드 주형을 생산하고 있는 ‘나미키 가나가타사’의 나미키 마사오 회장(72)은 “주문을 받았다면 장비추가를 검토하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수출기업과 주식시장 활황이 가져온 아랫목의 따뜻한 경기는 윗목까지 도달하지 못한 셈이다.
마츠무라 히데키 일본연구소의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 “몇년간 비용절감과 옛 장비로 버티던 기업들이 마침내 장비투자를 하고 있다”면서 “이는 좋은 징조이지만 기업들이 경쟁업체에 대해 경쟁력의 칼날을 가질 정도의 공격적인 투자와는 거리가 멀다”고 단언했다.
리처드 구 노무라연구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나미키처럼 해외 영업을 하지 않으면서 일본 경제의 중추를 구성하는 기업들이 차입하고 지출하기를 꺼리는 것은 아베 노믹스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후지츠연구소의 마틴 슐츠 이코노미스트는 “수출은 일본 경제에서 약 15%만을 차지할 뿐이며 토픽스 편입 기업들은 매출의 80%이상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고 꼬집고 “소비와 국내 투자에 기반을 둔 안정된 성장이 기초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
지연진 기자 gyj@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