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 작성에 하루 다 보내..교사 희망사항 1위 '잡무, 전시행정 폐지'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 김지은 기자]"한 학급당 학생 수가 44명이다. 학생들이 많다 보니 일일이 챙겨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 애들도 좁은 공간에서 복작복작하게 지내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한 학급당 25명 수준인 자율형사립고(자사고)가 생겨나면서 우리는 학생 수만 더 늘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 30%는 오히려 자사고에 뺏겨 버렸다. 일반고는 거의 슬럼화됐다. 몇 년 만에 담배를 피는 애들이 확 늘었다는 게 단적인 예다. 수업시간에 자는 아이들 깨우기도 지치는데 교권이 있겠는가."(서울 K고등학교의 한 교사)
선생님들이 뿔났다. 열악한 교실환경과 과도한 행정업무에 우울증을 호소하는 교사들도 늘고 있다. 특히 정권이나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각종 이벤트성 행사들이 이들의 불만 1위다. 입시위주의 수업, 획일화된 학교 분위기도 교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데 한 몫한다.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에서 4월15~26일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132개 학교의 교원 11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교사들의 평균 근무 시간은 주당 60.38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교원 주당 법정 근무시간인 40시간을 훨씬 넘는 수준이다.
또 교사들 업무의 30%는 각종 공문서 기안 작성 및 결재 등 행정업무였으며, 전체 절반이 넘는 교사들이 '불필요한 잡무 처리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서울 교사들만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학교생활 중 가장 어려운 점 1위로 '쓸데없는 잡무가 너무 많다(44.5%)'가 뽑혔다. 이어서 '생활지도와 수업이 힘들다(30.3%)', '교장의 비민주적인 학교운영(16.1%)' 등의 순을 보였다.
교직생활 24년째인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 행사가 너무 많아 학생들과 제대로 마주할 시간조차 없다. 교사들끼리 '숨 쉴 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인데 아마 조사해보면 교사들 우울지수가 꽤 높을 것이다. 항상 행사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문제가 터지면 대책회의를 하는 식이다 보니 교사들은 방관자, 방조자라는 비난만 받는다. 3월부터 쌓인 공문만 수백 개는 된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전교조 서울지부가 문용린 교육감 부임 전후의 교사들이 처리하는 공문량을 조사한 결과 3~4월의 경우 초등학교는 66%, 중학교는 26%, 고등학교는 35% 공문이 늘었다.
서울 남부의 한 중학교 교사는 "학교폭력 대책으로 스포츠클럽시간이 늘어났는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밀어붙이기로 진행돼 무리한 점이 많다"며 "예를 들어 7교시가 있는 학급 중 체육 관련 시간이 하루에 1교시, 3교시, 6교시 등 3시간이나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학생들도 너무 힘들어하고, 교사들도 힘들다"고 말했다. 동작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매번 정책들이 달라져서 현장이 혼란스럽다"며 "그 달라진 정책들이 고스란히 공문이 돼 내려온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교권 강화,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은 무엇일까. 교사들은 가장 우선 순위로 '잡무, 전시행정 폐지(55.0%)'를 뽑았다. 이어서 '민주적 학교운영 정착(15.4%)', '자사고, 고교선택제 폐지(13.4%)', '학급당 학생수 감축(10.1%)' 등의 순을 보였다.
조민서 기자 summer@
김지은 기자 muse86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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